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가 7일 총 54조 원으로 대폭 증액한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정부가 제출한 14조 원의 추경안에서 40조 원을 더 늘렸다. 무려 4배 가까이 증액을 시도한 것이다. 여야가 재원 마련 방안도 없이 대선 표심을 의식해 ‘재정 포퓰리즘’ 담합에 나섰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김부겸 총리는 이날 “국회가 뜻을 모아주신다면 합리적 방안을 도출하는 데 적극 임하겠다”면서도 과다 증액에 대해서는 “돈 몇십조 원이 어디서 한꺼번에 툭 떨어지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난색을 표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8일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재정 준칙 미입법과 국가 채무 증가 속도에 우려하고 있다”며 대폭 증액은 어렵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런데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재정 건전성보다 민생 안정이 먼저”라며 추경안 증액을 압박했다.
이미 올해 본예산 기준 국가 채무가 1000조 원을 넘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50%선에 이르렀다. 더 큰 문제는 나랏빚 증가 속도가 위험 수위에 달했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2020년 한국의 재정 악화 속도가 그리스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르다고 경고했을 정도다. 더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와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긴축에 나섰음에도 우리 정치권은 청개구리처럼 선거용 돈 풀기로 맞서고 있는 셈이다.
재정·무역 쌍둥이 적자를 보이는 가운데 외환보유액마저 3개월 연속 줄어들면서 우리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고 신흥국의 해외 자본 유출이 본격화되면 우리는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8일 나라 곳간 사정은 뒷전으로 미룬 채 추경안 신속 처리만 당부했다. 헌법 제57조에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예산안을 증액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홍 부총리는 이번에는 적당히 물러서는 ‘홍두사미’에서 벗어나 헌법 정신에 따라 정치권의 매표용 추경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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