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좀 보세요. 갑자기 오토바이가 창고 쪽으로 확 들어가잖아요.”
지난 8일 오후 4시쯤 서울경제 취재진이 서울 도봉구의 한 아파트 단지 주변에 들어서자 오토바이들이 굉음을 내며 간판 없는 건물로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단지 코앞에 마련된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의 창고형 물류센터에서 식료품과 생필품을 싣고 나온 오토바이들이다. 창고 앞 인도를 지나는 주민들은 오토바이가 튀어나올 때마다 움찔했다.
이곳에서 왕복 2차선 도로만 건너면 950여 세대 아파트와 상가가 있고 주변에 빌라들이 밀집해 있다. 상가에는 초등학생들이 다니는 음악·영어학원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단지에서 도보 2분 거리에 재학생 1000명 규모의 초등학교도 있다. 오토바이가 도로·인도를 달리면서 위협해 어린이를 비롯한 주민들은 안전, 소음, 매연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주부 김 모(42) 씨는 “아이들이 학원 차에 승하차할 때도 오토바이들은 그냥 들어오고 나간다”며 걱정했다. 인근 아파트 거주민 오 모(71) 씨는 “저녁이 되면 오토바이 소리가 더 시끄럽다”며 “창문을 열어 놓기조차 힘들다”고 호소했다. 대학생 이 모(24) 씨는 “배달원들이 창고 앞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워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서울 은평구 주택가에 입점한 배달 앱 물류 창고 주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창고가 있는 5층짜리 건물에는 여러 학원과 보습학원이 들어서 있다. 많게는 오토바이 7대가 한꺼번에 건물 입구로 몰려들면서 등·하원 시간마다 오토바이, 학원 차량, 학생들이 뒤얽혀 불안한 모습들이 자주 목격된다. 건물에 입주한 학원에 자녀를 보내는 양 모(39) 씨는 “빨리 배달해야 하니까 배달원들이 과격하게 운전하는 것 같다”며 “애가 다칠까봐 불안하다”고 말했다. 건물에 입주한 학원에 다니는 김 모(14) 학생은 “갑자기 건물 입구 앞에 오토바이가 급정거할 때마다 깜짝 놀란다”고 전했다.
주택가에 물류 창고들이 들어선 것은 배달 영역이 음식뿐만 아니라 식료품·생필품으로 확대되면서 ‘퀵커머스’ 업체 간 속도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일반 마트처럼 창고에 재고를 쌓아 놓고 주문 즉시 배달이 이뤄지도록 아예 주택가에 자리 잡은 것이다. 상업용 부동산 데이터 기업 알스퀘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서울에만 470여 개의 물류 창고가 있고 대부분 당일 배송 업체들이 이용하는 도심형 창고다.
배달 수요가 늘자 유통사들은 도심 곳곳에 물류 창고를 늘리고 있다. 도심형 물류 창고 마이크로풀필먼트(MFC) 30개를 운영하던 배달의민족은 지난해 11월과 12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에 MFC 8곳을 신규 출점했다. 지난해 7월 단건 배달 서비스 ‘쿠팡이츠마트’를 선보인 쿠팡은 송파·강동·강남·서초 등에서 10~15분 만에 물품을 배달한다.
도심형 물류 창고가 증가하면서 주택가의 사고 위험까지 늘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삼성화재 부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자사 이륜차 보험 가입자의 사고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결과 2020년 배달용 오토바이의 사고율(사고 건수/가입 대수)은 39.9%를 기록해 개인용의 약 3배에 달했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우선 오토바이가 교통법규를 위반할 때 범칙금이나 과태료가 즉시 엄격하게 부과돼야 한다”며 “난폭 운전을 하지 않도록 방지턱 설치 등 관련 시설 규제를 강화하고 오토바이 운전자 교육도 제대로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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