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살펴보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란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을 잘못 읽었나 싶어 다시 눈을 크게 뜨고 읽어보니 역시나 ‘카페에서 공부하는 젊은이’가 아니라 ‘할머니’였다. 순간 호기심이 일었다.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는 것도, 브런치를 먹는 것도 아니고 공부하는 할머니라니. 그렇게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를 쓴 심혜경 작가를 만나게 됐다.
심 작가는 사서로 27년 동안 일하다 우리말 책이 나오지 않은 원서를 읽고 싶어 시작한 번역일을 12년째 하고 있다. 그런 그의 별명은 ‘공부 생활자’이다.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습관처럼 했던 공부가 어느새 취미가 됐고, 이젠 매일매일 공부하는 할머니로 늙어가는 게 그의 꿈이어서 붙은 별명이다. 올해 계획을 묻는 말에 “프랑스어 공부”라고 말하는 뼛속까지 공부 생활자인 심혜경 씨의 인생 2막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 얼마 전 출간한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가 어떤 분인지 너무 궁금해 만나보고 싶었다.
“책에 카페이야기가 많이 나와 편집자가 책 제목을 그렇게 지었다(웃음). 책 제목을 정할 때 제목에 할머니를 붙이는 것에 대해 논의가 많았는데, 내가 할머니를 넣으라고 했다. 현재 내 나이가 아줌마보다는 할머니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 어르신들이 항상 젊은이들에게 카페에서 공부하면 잘되냐고 묻지 않나. 그 질문을 하고 싶다. 카페에서 공부하면 더 잘되나.
“집에서 하기 싫다는 핑계로 카페에서 많이 하는 듯하다. 나 같은 경우는 카페에서 공부를 하면 집에서보다 목적성이 생긴다. 내가 일하기 위해 혹은 공부하려고 일부러 노트북을 들고 나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집중해서 하게 되더라.”
- 공부를 하기 위해 카페를 자주 찾는 편인가.
“약속과 약속 사이의 남은 시간을 활용할 때 자주 찾는다. 틈새 시간에 일하면 능률이 오른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돼 항상 노트북과 책을 들고 다니는 편이다. 30분이 짧게 느껴져도 그 시간에 일 하나를 처리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노트북도 가벼운 것을 선호하게 되더라. ”
- 번역을 꽤 오래 하셨던데, 원래부터 그 일을 해왔나.
“사회생활의 시작은 공기업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다 우연히 사서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했던 게 인연이 돼 28년간 일했다.”
- 사서가 되려면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자격증이 있었던 건가.
“맞다. 인생이 우연의 산물이라고 여겨지는 게 그런 부분 때문인 듯하다. 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는데, 마침 다니던 대학교에 사서교육원이 있었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그곳에서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땄다. 덕분에 인생 전반에 좋아하는 책 곁에서 사서로 일할 수 있었다.”
- 사서라는 직업이 잘 맞았나.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업을 그만두고 시작했던 거라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열심히 일했다(웃음). 나는 책이 있는 도서관이라는 건물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만족하고 잘 다녔다. 다만 근무시간에는 책을 볼 수 없다(웃음).”
- 이야기를 들어보니 책을 정말로 사랑하는 듯하다.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별다른 보람이 없던 시대의 사람이다보니 자연스레 책에 빠졌던듯하다. 어릴 적엔 책 동냥을 다니기도 했다. 집에 있는 책을 다 읽으면, 집에 책이 많아 보이는 친구를 사겨 그 친구 집에 가서 책을 읽었다.”
- 번역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아니다(웃음). 단순히 영어를 잘하고 싶어 3개월 번역 과정 수업을 들었다. 그때는 영어를 잘하는 게 해석을 잘하는거라고 생각해, 영어를 한국어로 완벽하게 옮기는 기술을 배우려고 들었던 수업이다. 수업을 들으면서 번역이 우리가 흔히 아는 문법 공부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에는 회사에 다니면서 했었기에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3개월 과정이 끝났다. 그런 공부를 했다는 것도 잊고 있을 때쯤 번역일을 할 기회가 찾아왔다.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 회사에 다니면서 꾸준히 공부를 했던 듯하다.
“맞다. 오십 중반이 되니까 아이들이 커 퇴근 후 활용할 시간이 생기더라. 그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까워 공부를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독서지도나 독서치료프로그램을 운영할 때가 있는데, 심리학을 공부하면 프로그램 운영에 도움이 될 것 같아 53세에 심리학교육대학원을 갔다. 그때 번역일도 함께 시작했다.”
- 그럼 낮엔 사서로 일하고 밤에 번역일을 한 건가.
“그렇다. 나는 전업으로 번역일을 하는 사람들과 일의 속도가 달랐다. 중요한 것은 영어도 잘하지 못한(웃음). 대신 열심히 꾸준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퇴근해 저녁 8시부터 2시까지 번역일을 했다.”
- 보통 퇴근하고 나면 피곤해 쉬고 싶지 않나.
“물론 놀아도 된다. 놀아도 되지만, 나중엔 어떤 보람도 남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답이 나온다. 무엇보다 퇴근 후 번역일을 하는 게 재미있었다. 내가 늘 하는 말이 재미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 지금까지 몇 권의 책을 번역했나.
“15권 정도 했다. 번역은 하나씩 결과물이 나오는 게 좋더라. 그리고 번역할 때마다 내가 똑똑해지는 듯해서 좋다(웃음). 일부러 자기 발전을 위해 애쓰는 스타일이 아니다보니 일하면서 지적으로 보이면 좋지 않나. 하하.”
- 작가 소개에 보니 ‘공부가 취미’라고 돼 있던데, 자기 발전을 위해 애쓰는 스타일 아닌 거 맞나.
“하하하 더 좋은 일 생각나지 않아서 공부하는 거다. 직장이 있으니 유학은 갈 수 없고, 엄마로서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이 있으니 남은 선택지가 없어 공부했다. 가정, 육아, 직장 이 세 가지 축을 지키면서 나머지 시간에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거다.”
- 중년 이후의 공부는 젊은 시절의 그것과 달라야 할 것 같은데, 어떤가.
“중년엔 각잡고 공부하면 쓰러진다. 슬렁슬렁하다가 그만두고 싶을 땐 언제든 그만두면 된다. 물론 그게 반복되면 결과물이 없으니 잘 마무리 짓는 스킬을 키울 필요가 있다.”
- 마무리를 잘 짓는 나름의 스킬이 있다면.
“나는 주로 방송통신대학교(이후 방송대)를 다닌다. 가만 보면 학교는 졸업할 때까지 잘 그만두지 않는다. 그만두더라도 다시 돌아가 마무리를 짓더라. 그래서 방송대를 8년 다니면서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일본어를 전공했다. 2년에 언어 하나씩 공부한 셈이다.”
- 중년에 하면 좋은 공부가 있다면 추천해 달라.
“한번은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문화원에 갔더니 중년 남성들이 많더라. 우리는 한자 세대여서 중국어를 배우기에 접근성이 좋다. 그런 면에서 중국어 공부를 추천한다. ”
- 올해 계획이 있다면.
“방송대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는데, 부족함을 느낀다. 올해는 프랑스어 공부를 제대로 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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