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를 24일 남겨둔 13일 야권 후보 단일화 문제가 수면 위로 급부상하면서 대권 가도의 판세가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후보 등록 첫날 야권 후보 단일화를 전격 제안하면서 대선 정국이 급속도로 '단일화'의 블랙홀로 빠져들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살얼음 판세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두 자릿수 안팎의 지지율을 가진 안 후보와 윤 후보 간 결합은 단숨에 승부 추를 기울게 할 메가톤급 변수다.
다만 어떤 단일화를 이뤄낼지에 결과의 성패도 갈릴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투표용지 인쇄일인 오는 28일까지 단일화 협상을 마쳐야 효과가 있는데 시간의 촉박함은 물론 ‘국민 경선’ 방식 등 내세운 조건을 두고도 입장 차이가 커 ‘감동이 있는 단일화’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이 DJP식 결단을 야권 단일화의 성공을 이끌 방식으로 전망하는 이유다. 속도와 두 후보의 결단에 달렸다는 얘기다.
안 후보는 이날 오전 유튜브 기자회견에서 “더 좋은 정권 교체를 위해, 즉 구체제 종식과 국민 통합의 길을 가기 위해 야권 후보 단일화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윤 후보는 이에 대해 “(안 후보가) 정권 교체를 위한 대의 차원에서 제안하신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측은 '야권 후보 단일화'라는 대전제에 공감했을 뿐 첫 단추를 끼기 전부터 팽팽한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안 후보는 "여론조사 국민 경선으로 단일 후보를 정하고 누가 후보가 되든 서로의 러닝메이트가 되면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다"며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썼던 '여론조사 경선' 방식을 제안했다. 이양수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수석대변인은 "안 후보가 '국민 경선'으로 지칭해 제안한 방식은 정권 교체를 원하는 국민적 요구에 오히려 역행할 위험을 안고 있다"고 단박에 거절했다. 윤 후보도 "고민해보겠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서 부정적 입장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협상 타결까지 쉽지 않다는 전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안 후보는 국민 경선을 제안하면서 ‘차기 정부의 국정 비전과 혁신 과제를 국민 앞에 공동으로 발표하고 이행할 것을 약속한 후’라는 세부 조건도 달았다. 단일화 방식이 여론조사든 담판 협상이든 윤 후보는 다음 정부의 국정 운영을 안 후보, 나아가 국민의당과 함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안 후보는 어떤 형태의 단일화가 진행되든 국무총리와 장관 지명권 등을 양보한 ‘DJP연합’식 공동정부에 대한 요구를 붙였다. 이 같은 조건이 제시되자 당내에서 강한 반발이 나오고 있다. 안 후보가 “야권 후보가 박빙으로 겨우 이긴다고 해도 식물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공개적으로 지분을 요구했다는 불만이다. 한 중진 의원은 “이길 수도 없는 여론조사를 내걸고 더 나은 단일화 조건을 얻어내기 위해 연막을 치고 있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야권 단일화가 ‘당 대 당 연합’ 형태로 흐를 경우 지방선거 공천권 문제까지 꼬인다. 양당이 차기 정부의 국정 과제를 공동 이행한다고 약속한다면 대선 석 달 후 치러지는 지방선거에서 각자의 길을 가기는 어렵다. 안 후보는 최근 전국 152개 지역구에 지역선대위원장을 임명하며 전국 조직을 다시 세운 상황이다. 단일화 협상 테이블에 지방선거 문제가 얽히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한 장성민 전 의원이 안 후보를 향해 “정치 장날(선거철)마다 나와 염탐하다가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는 쪽을 기웃거린다”고 질타한 데도 이 같은 시각이 반영됐다.
결국 윤 후보가 안 후보를 만나 담판 방식으로 결론을 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3선의 김태흠 국민의힘 의원은 “국정 운영 안정감과 차기 국정 운영의 책임감을 고려해 단일화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론조사든 담판이든 두 후보가 결단해야 한다는 압박이다. 5선의 서병수 의원은 “(안 후보의 일부 조건을) 우리 후보가 받아들여 기득권을 내려놓고 오로지 순수한 마음으로 정권 교체에 부응하겠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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