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백상논단] 큰 정부 딜레마와 차기 대통령의 과제

손병권 중앙대 교수·정치학

'저성장 시대' 정부의 역할 커지지만

권력집중에 대한 불만도 더욱 거세져

국가재정·국민보건 등 과도한 팽창

적절한 위임 통해 靑 권한 분산해야

손병권 중앙대 교수·정치학




근대 서구 사회에서 태동해 비서구 사회로 확산된 민주주의는 자유와 권리, 평등, 법의 지배, 제한 정부 등 인간 본성에 부합하면서도 그 자체로 매력적인 가치를 만들어내면서 유지돼왔다. 이와 함께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일련의 혜택을 끊임없이 나눠주면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근대 초기 서구 민주주의는 토지 귀족에 저항한 부르주아에게, 이어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정치 세력화한 노동자에게 참정권을 제공하면서 성장해왔다. 또한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는 노동자의 권리 보장, 사회보장 제도의 확충 등 국민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물질적인 영역으로까지 그 기능을 확대했다. 민주주의는 이처럼 지속적인 성장과 분배, 그리고 계층 상승이라는 우호적 생태계 속에서 순조롭게 발전할 수 있었다.

유형·무형의 권리와 혜택을 나눠주면서 발전해온 민주주의가 21세기 들어서면서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 경제 양극화의 심화, 계층 간 이동성 단절 등으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기에 이르렀다. 과거에는 성장·배분, 그리고 상승 이동과 함께 진화해온 민주주의가 이제는 결핍, 저성장, 계층 간 단절 등 매우 낯선 요소들과 동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낯선 생태계가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는 관찰과 연구의 대상이다. 지금도 진행 중인 미국의 트럼프 현상과 그 후유증은 저성장의 민주주의가 포퓰리즘과 권위주의에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줘 자못 불안하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각국 국민들이 저성장의 민주주의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경향이 결코 우리도 예외는 아니라는 점이다. 더구나 코로나19 사태가 2년 이상 지속되면서 삶의 영위 자체가 절박한 문제로 부상하자 정부의 구제 정책, 그리고 국가의 보호와 관리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일상화됐다는 인상마저 갖게 된다. 장기적 경기 침체와 코로나19 국면에서 알뜰한 작은 정부론이 공허하게 들릴 정도로 국가는 새로운 지출과 구제 프로그램을 국민에게 계속해서 제공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우리의 대선 국면 역시 저성장의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궤도를 따라 질주하고 있다. ‘먼저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물어보라’는 케네디식의 공동체 의식 촉구는 코로나19의 후유증과 경기 침체 대책을 두고 경쟁하는 대선 주자들의 득표 전략에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실제로 지금 양대 정당 후보들은 서로 경쟁하듯 수십조 원 단위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에는 적극적인 반면 연금 개혁처럼 수혜의 지분을 줄이는 영역에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저성장의 민주주의 생태계에서도 여전히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정부의 기능과 역할을 팽창시키는 공약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경쟁적으로 양산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정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지속되는 한편 대통령 중심의 권력 집중 및 청와대 권한의 비대화에 대한 불만과 그 개혁에 대한 요구는 박근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기능의 팽창에 통상 동반돼 나타났던 비대한 행정국가와 권력 집중형 대통령제를 장기간 경험했던 한국 사회에서 차기 대통령은 과대 팽창된 정부 기능을 정상 수준으로 복원하면서 자신의 권한을 스스로 제한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동시에 추진해야만 한다.

장기 불황이나 코로나19 같은 비상한 상황에서 긴급한 사회적 수용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정부 기능을 확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국가 재정과 국민 보건 등의 분야에서 현재 정부 기능은 꽤 과도하게 팽창돼 있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고 또 지속돼서도 안 된다. 따라서 상황 전개에 맞춰 팽창된 정부 기능을 서서히 줄여가야 한다. 또한 대통령 업무를 현장 실무형으로 전환하며 적임자 임명과 적절한 권한 위임을 통해 대통령 권한을 정부 전반으로 분산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거나 새로운 집무실을 따로 두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지혜와 큰 용기를 필요로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