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당에서 일하며 일용직 남편과 가정을 꾸려 온 60대 여성 A 씨는 지난해 서울회생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다. 코로나19로 영업시간이 줄고 남편 수입도 급감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은행과 지인들에게 7000만여 원을 빌린 게 화근이었다. A 씨는 돈을 갚기 위해 4시간도 채 자지 않고 일했지만 밀린 이자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지인들이 집으로 찾아와 협박하는 지경에 이르자 A 씨는 결국 법원을 찾았다.
# 경비원으로 일하던 60대 남성 B 씨는 지난해 근무하던 아파트가 전문 경비 업체와 계약하며 일자리를 잃었다. 50만 원이 안 되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구직 활동을 이어갔지만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구직 기간이 길어지며 월세가 밀리기 시작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채권자로부터 1500만 원을 갚으라는 소송까지 들어오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법원에 파산 신청서를 제출했다.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2년간 네 차례에 걸쳐 원리금 상환 유예를 실시했음에도 지난해 서울회생법원에 접수된 개인 파산 건수가 5년 새 최다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원리금 상환 유예로 개인 회생, 법인 파산, 법인 회생 접수 건수 모두 전년도에 비해 소폭 줄었지만 개인 파산만 유일하게 증가했다. 근로 능력이 없고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 어려운 취약 계층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다. 원리금 상환 유예 정책이 끝나면 개인은 물론 법인에도 ‘도산 쓰나미’가 밀려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회생법원에 접수된 개인 파산 건수는 1만 873건으로 전년 1만 683건 대비 190건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16년 1만 1746건이 접수된 후 5년 새 최다치다. 같은 기간 개인 회생은 1만 6282건에서 1만 5228건, 법인 파산은 445건에서 393건, 법인 회생은 312건에서 255건으로 감소했다.
◇상환 유예에도 개인 파산 증가…취약 계층부터 무너지는 ‘적신호’=법조계는 코로나19 장기화 등에 따른 불경기에도 다른 도산 사건이 감소한 이유로 정부의 원리금 상환 유예 정책을 꼽았다. 서울회생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국내 경제가 극심한 한파를 겪는 가운데 개인 파산을 제외한 다른 사건이 감소한 데는 정부 대출 만기 연장 정책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개인 파산 접수 건수가 증가한 것에 대해 ‘가장 취약한 계층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회생법원의 또 다른 판사는 “최근 파산 신청자들을 보면 60대 이상이 많고 대부분이 5000만 원 이하 소액 채무자”라며 “정상적인 금융권을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다수”라고 설명했다. 근로 능력이 없고 정부의 대출 연장, 원리금 유예 조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계층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달 유예 종료 예정…'도산 쓰나미' 닥치나=문제는 정부의 대출 연장, 원리금 유예 조치가 끝난 후부터 개인과 법인을 가리지 않고 파산·회생 신청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이수 서울지방변호사회 개인파산·회생특별위원장은 “그동안 정부에서 소상공인 손실보상금 등을 지원해 줘 이 돈을 받기 위해 참고 사업을 유지해 온 사람들이 많았다”며 “코로나19 지원과 상환 유예가 끝나면 불가피하게 회생·파산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백주선 회생파산변호사회장도 “경제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대출로 버텨 온 사람들은 달리 방도가 없다”며 “결국 파산 신청을 위해 법원을 찾을 확률이 높다”고 전망했다.
2020년 3월부터 6개월을 주기로 실시된 대출 연장, 원리금 유예 조치는 다음 달 말 종료될 예정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19일 “만기 연장, 상환 유예 조치는 오는 3월 말 종료를 원칙으로 하되 종료 시점까지 코로나19 방역 상황, 금융권 건전성 모니터링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코로나19 금융 지원으로 납기가 연장된 대출과 이자의 총액은 올해 1월 말 기준 총 139조 4494억 원이다. 이 위원장은 “원리금 상환 유예가 끝나더라도 지방세 감면 등 소상공인들이 연착륙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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