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촬영이 발생한 여자 화장실을 이용했다면 피해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더라도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자로부터 손해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민사34단독 김동진 부장판사는 KBS 직원들이 공채 출신 프리랜서 개그맨 박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박씨는 여의도 KBS 연구동 여자 화장실에 불법 촬영용 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박씨와 검찰 양측이 상고하지 않아 이 판결은 2020년 2월 확정됐다.
같은 해 9월 박씨가 카메라로 불법촬영을 한 기간에 해당 화장실을 이용한 KBS 여성 직원 일부는 사생활 등이 침해됐다며 손해배상금 300만원씩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냈다.
박씨 측은 "원고들이 위 유죄판결 범죄사실의 피해자 란에 기재되어 있지 아니하므로 이 사건 민사소송을 제기할만한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가 직장 내 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촬영한 불법행위로 인해 원고들의 프라이버시권이 침해된 사실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며 박씨가 원고들에게 1인당 위자료 1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비록 수사기관에서 확보한 피고의 사진파일에는 원고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진영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원고들이 가장 내밀한 사적 공간인 여성화장실 내에서 여러 가지 생리작용을 할 때 프라이버시권 침해에 대한 구체적인 위험성은 피고가 설치한 몰래카메라로 인해 상당한 정도 노출돼 왔었던 것으로 보이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엄격한 증명'의 원칙이 적용되는 형사재판과 달리 민사재판에서의 소송상 주장사실 및 이에 대한 근거로서의 증거 채용은 형사재판보다 다소 완화돼 좀 더 유연하게 인정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박씨는 2018년 KBS 연구동 화장실에서 칸막이 위로 손을 들어 올려 피해자가 용변을 보는 모습을 촬영하는 등 총 32회에 걸쳐 피해자를 촬영하거나 촬영을 시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또 지난해 5월 27일부터 29일까지 15회에 걸쳐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피해자의 모습을 찍거나 촬영을 시도했으며 이 같은 촬영물 중 7개를 소지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1심 재판부는 징역 2년을 선고했으며 2심 재판부도 지난해 2월 원심과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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