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의 외교적 해결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서방과 러시아가 어떤 타협점을 찾을지 주목된다. 당장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철회에 대한 관측이 급부상하고 있다.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이번 사태의 출발점이자 당사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극렬하게 반대하는 핵심 사안을 일단 ‘보류’ 상태에 놓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 의지를 끝까지 고수한다면 동부 분쟁 지역을 나토와 러시아 간 완충지대로 활용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16일 외신을 종합하면 침공 ‘D데이’로 거론됐던 이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된 병력 일부를 철수한 데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재검토 움직임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일(현지 시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만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말에도 단서가 있다. 숄츠 총리는 회담 직후 자국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이번 사태의 현안이 아니다”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나토 모두 가까운 미래에 벌어지지 않을 일로 상황을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나토 가입을 원하지만 이는 먼 꿈”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독일·러시아 정상회담 하루 전에 만난 숄츠 총리와 젤렌스키 대통령 간에 나토 가입에 대한 모종의 협의가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영국 가디언도 최근 “숄츠 총리가 향후 10년 안에 나토에 합류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우크라이나로부터 받아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
다만 ‘나토 가입 노선’이 헌법에 명시된 만큼 우크라이나는 이 같은 양보로 자칫 극심한 내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당장 이날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오직 우크라이나와 나토만이 가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과 상충하는 입장을 내보였다.
이럴 경우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루간스크주) 지역을 완충 지대로 활용하는 대안이 떠오를 수 있다. 러시아는 지난 2014년 친러 분리주의자와 우크라이나 정부군 간에 발생한 무력 분쟁 이후 1·2차 민스크 협정에 따라 정전 중인 이 지역의 독립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 의회도 15일 푸틴 대통령에게 돈바스 지역의 자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의 우크라이나 참정권을 지렛대로 삼아 자국 정치에 간섭하려 한다는 입장인 만큼 이 시나리오 역시 현실화하려면 상당한 진통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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