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베를린·베니스 3대 국제영화제에서 모두 감독상을 수상한 거장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70년대 청춘들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10대 사춘기 소년과 불안한 20대 여성의 사랑과 성장을 낭만적 색채로 그려낸 ‘리코리쉬 피자’다. ‘데어 윌 비 블러드’, ‘매그놀리아’, ‘마스터’ 등 미국 사회의 이면과 뒤틀린 인간의 심연을 밑바닥까지 집요하게 탐구했던 전작들과 달리, 시종일관 산뜻한 분위기의 영화다.
배경은 1973년 어느 여름날,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샌 페르난도 밸리. 15살 소년 개리(쿠퍼 호프만)가 학교에서 졸업사진을 찍다가 사진관 알바생인 25살 알라나(알라나 하임)를 만나며 이야기가 시작한다. 어린 나이에도 아역 배우 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작게나마 자기 사업을 할 만큼 자신감이 강한 개리는 알라나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다. 그리고는 남동생에게 ‘결혼할 운명을 만났다’고 말할 만큼 확신도 세다. 반면 성인인 알라나는 이렇다 할 직업도 없는 불안한 청춘이다. 10대와 20대가 사귀면 범법이지만, 알라나도 개리의 당돌함이 싫지는 않아서 개리의 투어에 부모 대신 임시 매니저로 동행하고, 개리의 물침대 판매 사업에도 함께 한다. 두 사람은 여러 사건들을 통해 흔들리고, 방황하면서 사랑과 정신적 성장을 경험한다.
앤더슨 감독은 연기 경험이 없는 쿠퍼 호프만과 알라나 하임을 주인공으로 발탁해 청춘의 낭만적 정취를 풋풋하게 표현해 냈다. 이 점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 가운데 하나다. 둘은 조연으로 참여한 숀 펜, 브래들리 쿠퍼 등 명배우들과도 좋은 호흡을 선보인다. 호프만은 앤더슨 감독의 페르소나였던 배우 고(故) 필립 시모어 호프만의 아들이고, 알라나 하임은 지난해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올랐던 3인조 자매 밴드 하임(HAIM)의 멤버로, 앤더슨 감독과는 뮤직비디오 촬영으로 인연을 맺었다. 극중 하임이 내리막길에서 대형 트럭을 능숙하게 후진으로 운전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감독은 이 청춘물에 여러 자전적 요소를 집어넣었다. 샌 페르난도 밸리는 그가 지금도 살고 있는 고향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동네 중학교에서 한 남학생이 여성에게 고백하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이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아역배우 출신으로 물침대 사업을 한다는 설정은 친한 제작자 개리 고츠먼의 실제 에피소드다. ‘리코리쉬 피자’는 1970년대 음악 등 대중문화에 대한 헌사기도 하다. 데이빗 보위 ‘라이프 온 마스’, 폴 매카트니 앤 윙스 ‘렛 미 롤 인’, 도어스 ‘피스 프로그’, 소니 앤 셰어 ‘벗 유 아 마인’ 등의 명곡들은 중요한 장면마다 분위기를 띄운다. 쿠퍼가 연기한 존 피터스는 '슈퍼맨' 시리즈의 프로듀서인 실존인물이고, 숀 펜은 1950년대 유명 배우 윌리엄 홀든을 본뜬 잭 홀든을 연기한다. 제목인 ‘리코리쉬 피자’는 당시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영업하던 레코드 가게 체인점의 이름이다.
영화는 다음 달 열리는 아카데미상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에 노미네이트된 상태다. 거장이면서도 아카데미상과 인연이 없었던 앤더슨이 이번엔 수상이 가능할지 주목된다. 러닝타임 1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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