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마스크와 몰입도 높이는 섬뜩한 연기. 배우 유인수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속 유일무이한 빌런 캐릭터로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어디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보석 같은 신예인가 싶었더니, 기초부터 탄탄히 길을 닦아온 6년 차 배우라고. 제 몸에 딱 맞은 옷을 입고 훨훨 날게 된 그가 보여 줄 모습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감독 이재규/이하 ‘지우학’)은 갑자기 퍼진 좀비 바이러스 때문에 학교에 고립된 고등학생들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 지난달 28일 공개된 뒤로 보름간 넷플릭스 TV쇼 부문 글로벌 1위를 지키고, 넷플릭스 비영어 TV 부문 역대 시청 시간 5위에도 오르는 등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작품과 배우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사이, 유인수에 대한 반응은 유난히 뜨겁다. 그가 연기한 귀남 역은 2인자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가 인간도 아니고 좀비도 아닌 이른바 ‘절비’가 되면서 얻은 초인적인 힘을 옳지 않은 곳에 쓰는 인물. 좀비 바이러스로 세상이 패닉이 된 상황에서도 오로지 같은 학교 학생 청산(윤찬영)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를 쫓는다. 시청자들은 등장할 때마다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귀남에 주목했고, 유인수는 작품 공개 후 인스타그램(SNS) 팔로워 수가 3만명에서 140만명으로 껑충 뛰는 등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이제 막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유인수는 꾸준히 배우의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1998년생으로 올해 25세가 된 그의 데뷔작은 2017년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 이후 ‘학교 2017’ ‘부암동 복수자들’ ‘라이프’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등에서 조연으로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남달리 학생 역할을 많이 했던 그는 ‘지우학’에서도 강점을 살렸다.
그가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다. 워낙 동적인 활동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육상 선수도 해보고 패션 디자인 공부를 위해 재봉틀도 배워봤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같은 반 친구가 연기 공부를 하는 것을 보고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연기도 사실 되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나도 한번 연기를 해봐야겠다’ 싶어서 친구가 다니는 학원을 찾아갔거든요. 그런데 반에 정원이 가득 찼다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그 옆 건물에 있는 연기학원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연기를 시작했었죠. 그런데 하다 보니까 저와 정말 잘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냥 너무 즐거웠어요.”
“제가 조금 내성적인 면이 좀 있어서 사색을 많이 해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생각을 하는 편인데 연기를 하다 보니까 장점으로 발휘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내가 그동안 콤플렉스라고 생각했던 게 여기서는 나의 강점이 되는구나’ 싶어서 자연스럽게 연기에 매력을 느꼈어요.”
연기에 발을 내딘 뒤로는 보조 출연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그러면서 좀 더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연극영화과로 진학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대학교 입시 준비에 매진했다. 그런 와중에 ‘SAC 전국청소년 연기경연대회’에 참가해 독백 연기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이재규 감독과 처음 인연을 맺고 ‘지우학’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기도 하다.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학원 벽면에 포스터가 붙어 있더라고요. 제 기억으로는 당시 8등까지 상금을 줬었거든요. 제가 혼자서 입시 원서비를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서 한번 나가볼까 싶었죠. ‘내가 만든 독백도 평가 받아볼까’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어떻게 하다보니 대상에 입상해서 상금 100만원을 탔어요. 입시 원서비로 다 썼고요. 지금은 옛날 대회 영상을 진짜 못 보겠더라고요. 그런데 요즘 제 유튜브 알고리즘에 제 영상이 계속 뜨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 제발 좀 이렇게 안 떴으면 좋겠는데’ 하면서 계속 피하고 있어요.”(웃음)
수줍어하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유인수는 귀남과는 정반대 모습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성격유형검사 MBTI에 따르면 실제 그의 성격은 ‘선의의 옹호자’ ‘예언자’로 불리는 INFJ란다.
“제가 MBT 검사를 몇 번 해봤는데 계속 INFJ가 나오더라고요. 저만 알고 있는 저의 내면의 모습들이 많은데요. 그걸 풀이하듯이 다 적어놓은 것 같았어요. 그러고 나서는 ‘아 MBTI가 생각보다 사람 유형을 잘 파악을 해놓고 있구나’ 싶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사람을 만나면 MBTI도 물어보고 궁합도 한번 슬쩍 보고 그래요.”(웃음)
“MBTI를 보고 진짜 아무 생각을 안 하고 멍 때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조금 놀랐어요. ‘진짜 어떻게 아무 생각을 안 할 수가 있지?’ 싶더라고요. 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거든요. 그러다가 하나에 꽂히면 또 그 생각을 계속하고 있고요. 계속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사실 필요 없는 생각도 많이 하고 쓸데없는 생각 때문에 괜히 혼자 스트레스 받고 하는 것들이 되게 많아요. 그런데 연기를 시작하니까 그게 오히려 정말 저한테 좋은 강점이 되는 거예요. ‘이 인물이 어땠을까’를 계속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니까 그래서 참 천직을 만났나 싶을 때가 많아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때문에 힘든 무명 시절에는 간혹 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보고는 했다. ‘뷰티 인사이드’가 개봉한 2017년은 한참 연기에 대한 고민도 많고, 아직 능력은 부족하지만 열정 하나로 부딪힌 시기. 그럴수록 ‘대배우’라고 일컬어지는 배우들에 대한 동경심이 엄청났다. 그때 한효주의 연기를 보고 ‘내가 연기를 한다면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효주의) 작품들을 다 찾아보게 됐어요. 현재도 시간이 남거나, 저도 제가 어떤 마음인지 잘 모를 때 좀 ‘뷰티 인사이드’는 가끔 찾아봐요. 며칠 전에는 한효주 선배님이 나온 ‘해어화’도 넷플릭스에서 봤거든요. 일부러 한효주 선배님을 좇아간 건 아니었지만 눈에 띄어서 봤어요. 제가 열심히 해서 더 잘하는 배우가 되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역할이든 정말 상관없고요. 귀남이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대적해도 정말 상관없어요. 호흡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웃음)
유인수가 선망하고 있는 배우는 또 있다. 바로 조승우. 유인수는 설레는 표정으로 조승우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이 ‘덕질(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하는 배우라고 했다. 그는 조승우의 단막극부터 지난 작품들, 연기 영상들을 계속 찾아볼 정도로 좋아한다고. 그런 조승우와는 JTBC ‘라이프’에서 한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제가 정말 작은 역할이긴 했지만 ‘라이프’에서 조승우 선배님과 한 번 마주한 적이 있어요. 제가 너무 고된 노동 때문에 피곤함에 약물을 잘못 투여하게 돼서 환자를 해하게 되자, 조승우 선배님이 와서 ‘너희들의 잘못으로 환자가 죽었다’고 하면서 호통치는 장면인데요. 되게 유명한 장면이에요. 클립 영상으로도 그렇고 연기하는 친구들도 굉장히 많이 봤을 거예요. 근데 거기서 호통을 받는 친구가 사실 저거든요. 지금도 그 클립에 사실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영광스러워요, 선배님의 그 연기를 제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같이 호흡한 거니까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적고 있는 연기 노트가 있는데 거기에 ‘(조승우 선배님과) 다음에 만났을 때는 더 가치 있는 배우가 돼서 더 좋은 작품에서 더 만났으면 좋겠다’라고 적어놓은 게 있더라고요. 며칠 전부터 계속 이렇게 보고 있었어요. 조승우 선배님 제가 정말 정말 정말 덕질 하고 있습니다.”(웃음)([인터뷰②]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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