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가 15일 9개 식품 기업들을 호출해 물가 안정 협조를 요청했다. 원자재→수출·수입품→가공식품 등으로 가격 폭등 도미노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과 만나는 것은 ‘시장 파악’을 위한 선의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규제 기관인 농림축산식품부는 물론 기업들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까지 함께한 것은 기업들에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유류세 인하 외에 이렇다 할 물가 대책을 내놓지 못한 정부가 이제 와 민간의 팔을 비트는 것은 ‘완장’을 차고 물가를 통제하겠다는 발상과 다름없다.
문재인 정부의 어설픈 물가정책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돈 풀기 선심 정책을 지속해왔다. 심지어 한국은행까지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도 국채를 대량 매입해 통화량을 늘리는 갈지(之)자 정책을 펴고 있다. 인플레이션 방어의 최후 보루가 돼야 할 중앙은행이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한다면 ‘통화정책의 정치화’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러니 기준금리 인상에도 지난해 12월 광의 통화량(M2)이 전년 동월 대비 13년 만에 최고인 13.2%나 급증한 것이다.
물가 대란의 경고음이 울린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물가 상승은 이제 곡물 값 급등에 따른 애그플레이션부터 탄소 중립에 따른 그린플레이션까지 설상가상의 형국으로 번지고 있다. 3·9대선이 끝나면 전기 요금 등 억눌러온 공공요금까지 봇물 터지듯 오르면서 물가는 통제하기 힘든 수준으로 폭등할 수 있다. 정부는 관권으로 물가를 잡을 수 있다는 발상을 버리고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대비해 통화·금리·환율·조세 정책을 아우르는 정교한 폴리시믹스(정책 조합)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해외 자원·식량 확보 외교 등 가용 정책을 펼쳐야 하는 비상 상황을 맞은 정부가 대선판이나 기웃거려서야 되겠는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