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에서 열린 트럭 기사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는 우리가 흔히 아는 것과는 조금 다른데요, 구글에서 ‘캐나다 시위 밈’이라고 검색하면 아래와 같은 사진이 등장합니다. 이런 밈은 캐나다의 시위가 얼마나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지를 다소 놀리기(?) 위해 사용되곤 하죠.
하지만 이번 시위는 다소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무려 긴급조치법을 발동하고 경찰도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하겠다며 연일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시위대는 여전히 요지부동으로 시위는 3주간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시위를 주도한 이들이 트럭 기사들이 아니라 극우 세력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캐나다를 마비시킨 시위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걸까요.
■백신 의무화·격리 조치에 반발한 트럭 기사들
먼저 이번 시위가 나온 배경을 살펴볼까요. 지난달 15일 캐나다 정부는 미국에서 캐나다로 입국하는 모든 화물차 운전자들에 대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2주간 격리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사실 정부는 이미 이 같은 규정을 보통의 캐나다 국민들과 캐나다에 입국하는 이들에게 이미 적용했었는데요, 공급망 붕괴 이슈로 인해 그간 지침의 예외 대상이던 트럭 기사들에게도 적용하기로 한 겁니다. 트럭 기사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지난달 29일 오타와에서 항의 집회를 벌였습니다. 이후 정부의 방역 조치에 반대하는 이들까지 가세하면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죠. 시위대를 스스로를 '자유 호송대'라고 명명했는데요, 이들이 트럭으로 도로를 점령하고 경적을 울려대면서 주변 상인과 시민들이 피해를 입기도 했죠. 특히 시위대가 미국과 캐나다를 잇는 주요 도로를 점거하면서 포드와 도요타, 혼다 등 캐나다 자동차 공장 6곳의 생산이 중단되는 등의 경제적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결국 트뤼도 총리는 지난 14일 “봉쇄가 경제를 해치고 공공 안전을 위협하고 있어 불법적이고 위험한 활동이 계속되도록 허용할 수 없다”며 긴급조치 발동까지 선언했습니다. 지난 1988년 통과된 긴급조치법은 연방정부가 국가 비상 상황에서 치안을 지키기 위해 각 주의 관할을 넘어서는 특별 임시 조치를 취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인데요. 이에 따라 캐나다 연방정부는 시민들의 이동·집회에 대한 권리를 일시적으로 정지하는 것은 물론 시위에 사용된 트럭 등 차량을 압류하거나 시위대의 은행 계좌 동결 등의 조치도 취할 수 있게 됐습니다.
■트럭 기사가 시작했지만…극우 세력에 넘어가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이 시위가 이제 더 이상 트럭 운전사들만의 시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AP통신은 이 시위의 이름인 '자유 호송대'는 지난달 1월 초 큐아논의 지지자인 제임스 보더가 설립한 캐나다 유니티라는 단체가 발표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온타리오주의 더그 포드 주지사도 미국과 캐나다를 잇는 '앰배서더 브릿지'를 봉쇄하는데 쓰인 차량은 상업용 트럭보다 개인 차량이 대부분이라며, 상업용 트럭이 5대에 불과했다고 말했습니다. 캐나다 화물연대는 국경을 넘나드는 트럭 기사의 약 10%만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다며, 이 시위를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극우 세력들이 트럭 기사들의 시위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죠.
트뤼도 총리가 긴급조치까지 발동한 것도 시위가 장기화된 데다 시위의 양상도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극우 세력이 주도하는 것으로 다소 이상하게 흘러갔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NYT는 "트럭 호송대 시위가 전 세계 극우 세력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고 있다"며 "처음에는 트뤼도 총리가 시행한 백신 의무화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후 일반적인 팬데믹 제재에 대한 시위를 포함하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이를 입증하듯 테드 크루즈 미 공화당 상원의원은 시위에 참여한 트럭 운전사들을 '영웅'이자 '애국자'라고 칭하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트뤼도 총리를 '극좌 미치광이'라고 부르는 등 이 시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죠. 심지어 트럼프는 "(캐나다 호송대가) 우리의 지도자들이 해왔던 것보다 미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며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위대한 캐나다 트럭 기사들이 알기를 바란다"고도 말했습니다. 극우 세력임을 드러내듯 시위에서는 나치를 상징하는 문양이 등장하기도 했죠. 과거 트럼프의 슬로건이었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본 딴 '캐나다를 다시 위대하게(MCGA)'도 나타났습니다.
■캐나다에도 등장한 큐아논…살해 공모까지
이를 보여주는 보고서도 존재합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일명 '자유 호송대'가 오타와에 도착하기 전에 연방 정부가 폭력 극단주의 단체들이 시위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며 "캐나다 통합테러평가센터(Itac)의 정보평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극단주의자들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Itac은 이번 시위가 테러 공격을 촉발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는데요. 한 연방정부 관계자는 가디언에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이 올 것을 알았다"며 캐나다의 주요 정보기관이 극단주의 단체 등의 시위 개입을 알렸다고 말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부분은 미국의 극우단체인 큐아논(QAnon)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보고서는 자칭 '캐나다의 여왕'이라는 로마나 디둘로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의료종사자와 정치인들을 살해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가디언은 실제로 이번 시위에서 디둘로와 디둘로의 추종자들이 오타와에 나타나 이들을 상징하는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디둘로는 코로나19 백신을 투여한 의료진을 죽이라는 부추기는 내용의 글을 텔레그램에 올려 경찰에 구금되기도 했죠. Itac은 오타와 외에 퀘벡에서도 큐아논의 깃발이 목격됐다며, 여타 극단주의 단체의 회원 100여명도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밖에도 Itac은 칼이나 총기, 개인이 만든 폭발물 등의 무기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는데요, 이를 입증하듯 며칠 전 경찰은 앨버타 쿠츠에서 경찰 살해 공모 혐의로 4명을 기소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경찰이 이들 관련된 트레일러 3대를 수색해 13정의 장총과 권총, 마체테, 방탄복, 탄창 등의 무기를 발견하기도 했죠.
시위에 등장한 것은 큐아논만이 아닙니다. 캐나다 내 분리주의자들도 이번 시위에 가세했는데요, 뉴욕타임스(NYT)는 캐나다 서부지역 분리를 주장하는 타마라 리치가 이번 시위의 '얼굴'이 됐다고 보도했습니다. 고펀드미도 이번 시위에서 캠페인을 조직해 780만달러를 모금하는데 리치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혔죠. AP통신은 시위대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기브센드고를 통해 받은 기부금 1000만달러 중 44%가 미국에서 전달됐다고 보도하기도 했죠. 이에 대해 빌 블레어 캐나다 공공안전부 장관은 "지금 이 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것은 주요 인프라와 민주주의 기관에 대한 외국의 대규모 자금 지원과 표적화, 조직화된 공격"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백신 의무화에서 시작돼 극우 세력의 집결지가 된 캐나다의 시위는 과연 어떤 엔딩을 맞게 될까요.
#기자페이지와 글로벌체크를 구독하시면 글로벌 뉴스를 보다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yeona@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