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국회에 있던 기자들 사이에서는 탄식이 터져나왔습니다.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처리를 두고 여야간 협상이 하루종일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의원들에게선 “결론이 안 났다”,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조금 뒤에 다시 모일 것”이란 말만 나왔습니다. 오후 6시로 예정됐던 본회의는 6시 반, 7시, 7시 반, 8시로 점점 미뤄졌습니다. 오후 8시 40분, 추경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국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요.
與野 “추경안 처리”엔 한목소리…미묘한 신경전
이날 오전 10시, 국회의장실에서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의 회동이 있었습니다. 정각에 시작된 회동에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소상공인들에게 희망을 빨리 드려야 한다는 긴급구난의 시기이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은 대선 후 여야가 노력을 하자”며 “의장께 오늘 반드시 이번 추경안을 본회의에서 처리 해주십사 요청한다”고 말했습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기왕에 추경한다면 최소 46조 원 정도의 규모여야 한다고 얘기해왔지만 정부와 여당이 새벽에 개의를 요구하는 등 협조하지 않은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오늘 안으로 정상적 절차를 밟아 추경안을 처리해야 한다”며 신속한 추경안 처리의 필요성에 공감했습니다.
약 45분 후 의장실을 나온 원내대표들은 기자들과 만나 “오후 6시에 추경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열릴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직후 김기현 대표는 긴급기자간담회를 열었습니다. 그는 지난 19일 새벽 오전 2시 8분께 민주당이 단독으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4분 만에 추경안을 처리한 것을 두고 “무슨 군사작전도 아니고 민주당이 야당의 참여를 차단해 예산안을 날치기 처리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정부안에 더해 4조 3700억 원 규모의 추경 예산 증액 3대 패키지를 제안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민주당에서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6시 본회의에서 추경안 처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큰 틀에서 오늘 추경을 마무리한다는 정신은 합의했고 최대한 저희 입장을 관철시킬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오늘 한다며?” 협상 결렬
양당의 확고한 입장 때문이었을까요, 합의는 지지부진했습니다. 오후 1시, 추경 예산안에 대한 수정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의 원내수석부대표, 예산결산위원회 간사가 만나 2+2 회동을 가졌습니다. 한 시간 뒤 다시 국회의장과 양당 원내대표의 회동이 예정돼있었지만, 2+2 협상 자리는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후 2시 8분, 회동을 끝내고 나온 한병도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여야가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있는데 그걸 검토하는 것”이라며 “여기서 결론이 안 날 것 같고 10분 후 의장실에서 보기로 했으니 거기서 기다리라”고 말했습니다. 이후에도 각당별로 논의하는 시간을 거쳐 오후 2시 41분께야 의장실 회동이 이뤄졌습니다.
이때부터 상황을 짐작하기도 어려운 긴 협상이 이어졌습니다. 오후 3시 11분 의장실을 나온 김기현 대표와 추경호 부대표는 “특별히 말씀드릴 것이 없고 추가 논의가 필요해 오후 4시에 다시 뵙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본회의가 늦어질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회동은 오후 4시 55분에야 재개됐고 30분가량 뒤 드디어 양당 대표가 입을 열었습니다. 윤호중 대표는 “여야간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민주당이 단독 처리하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야당도 들어오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을 흐렸습니다.
이어 한병도 부대표가 “정부안 14조원에서 추가 증액을 3.3조원으로 하기로 했다”며 “총 규모는 16.9조 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소상공인 손실보상률을 80%에서 100%로, 법인택시 기사 및 전세·노선버스 기사 등 지원금을 300만 원으로 하자는 등 증액을 요구했습니다. 한 대표는 “저희도 이런 의견을 부정한 건 아니지만 정부를 설득했고 이게 그 결과”라며 “정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현실적이지 않다는 판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협상은 결렬된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국민의힘에서 본회의에 참석을 안 해도 처리할 것이냐는 질문에 “처리할 것”이라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본회의는 오후 7시로 미뤄졌습니다.
막판 합의…찬성 95.31%로 통과
같은시간 국민의힘은 급하게 의원총회를 열었습니다. 김기현 대표는 의총에서 “최종적으로 합의 처리를 하기로 했다”며 “최종 합의문안을 가다듬은 뒤 8시께 본회의를 열어 마무리 하려고 한다”고 알렸습니다. 회동 이후 물밑에서 논의가 이뤄졌고 국민의힘이 지속적으로 주장하던 운수종사자 지원금 증액 등에 여야가 합의한 것입니다. 이후 양당 대표는 “정부안(14조 원)보다 3.3조 원 수준을 증액하되 추가적 국채 발행 없이 예비비 일부감액(0.4조원) 및 특별회계 기금 여유자금 등으로 소요를 충당한다”면서 “이에 따라 추경 규모는 정부안 14조에서 16.9조원으로 확대된다”고 합의문을 발표했습니다. 오후 8시 40분께 본회의에서는 찬성 203인, 반대 1인, 기권 9인으로 드디어 추경안 의결을 선언하는 의사봉이 두드려졌습니다.
이번 추경에 따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방역지원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업종과 관계없이 지난해 12월 15일 전 개업해 매출이 줄었으면 300만 원을 받습니다. 매출 감소 입증이 어려운 간이과세사업자 10만 명도 포함됐습니다. 정부는 국무회의를 거쳐 오는 23일부터 방역지원금을 지급합니다. 손실보상 범위는 지금의 80%에서 90%로 늘어났습니다. 이밖에 특수고용노동자·운수종사자 등에 대한 지원과 방역 예산도 늘었습니다. 소상공인 손실보상과 특수고용노동자 등에 대한 지원금은 다음 달 중 지급 절차가 개시됩니다. 한 달 여간 지속된 추경 논쟁이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추경이 오미크론으로 얼어붙은 소상공인의 가계를 녹여줘야 할 것입니다. 여야 모두 대선 이후 추가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대선 이후에도 어떤 지원책을 어떻게 마련될지 잘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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