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친러 반군 세력이 세운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에 대한 미국인의 신규 투자와 무역·금융 활동을 금지했다. 두 지역의 독립을 승인한 러시아에 즉각 반발한 것이지만 러시아를 직접 겨냥한 제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제재 수위가 높다고 볼 수는 없다. 우크라이나에 대해 전면 공격을 할 경우에만 그간 준비해온 러시아에 대한 전방위 제재에 나서겠다는 게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21일(현지 시간) 백악관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런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브리핑에서 “22일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은 이날 달러 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 시스템 퇴출 등 러시아를 직접 겨냥한 제재는 발표하지 않았다. 미 고위 당국자는 “돈바스 지역으로 러시아군이 진입한 것 자체는 새로운 움직임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며 “돈바스 지역에는 지난 8년간 러시아군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행정명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대비해 동맹국 및 파트너와 협력해 준비한 신속하고 가혹한 경제제재 조치가 아니다”라며 “우리는 (러시아) 탱크가 (우크라이나로) 굴러갈 때까지 러시아와 외교적 협상을 추구하겠다”고 덧붙였다.
실제 DPR과 LPR은 러시아의 영향력이 매우 강한 지역이다. 러시아 시민권을 가진 주민만 80만 명에 이른다. 두 지역 내 공공 부문 종사자의 임금과 연금은 러시아가 직접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지역은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의 교육 커리큘럼을 따르며 러시아 루블화를 공식 통화로 사용한다.
유럽연합(EU)과 일본 역시 규탄 수위는 높였지만 러시아 직접 제재에는 신중한 모습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러시아의 DPR·LPR 독립 승인은) 국제법과 민스크 협정을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것”이라며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카를 네하머 오스트리아 총리는 “(독일과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미승인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비해 마련한) EU 제재에 포함된다”고 말했지만 러시아의 이번 움직임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보는지에 대한 평가는 내리지 않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주요 7개국(G7) 및 국제사회와 협력하며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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