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10일 서울경제 1면. ‘대한민국 19대 대통령 문재인, 당신을 믿습니다’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이 활짝 웃으며 박수 치는 상반신 사진이 실렸다. 문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직후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촛불 정신으로 집권한 문 정부는 ‘개혁’과 ‘통합’을 약속했다.
문 정부 5년이 불과 두 달여 남았다. 최근 한 여론조사 기관에 따르면 임기 말인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잘하고 있다)은 무려 48.5%에 이르렀다. 대통령 당선 당시 득표율 41.08%를 웃도는 수치다. 물론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 역시 49.9%에 달했다. 문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외쳤다는 점에서 양극단으로 절반씩 갈리는 국정 수행 지지율은 아이러니하다. 친문 지지자와 반대 진영을 ‘갈라치기’한 국정 운영의 결과로 풀이된다.
문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정권의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문 대통령은 집권 이듬해인 2018년 1월 신년 인사회에서 “좋은 일자리 창출과 격차 해소에 정부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공언했다. 경제정책도 양극화 해소를 위한 소득 주도 성장과 혁신 성장, 공정 경제에 방점이 찍혔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가 잘 아는 대로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말 많았던 소득 주도 성장이 사실상 실패로 결론 난 후 포용 성장과 한국판 뉴딜까지 꺼냈지만 양극화는 해소되지 않았다. 전임 정부보다 예산을 큰 폭으로 늘리고 수차례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하는 확장 재정 정책을 펼쳤지만 소용없었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전례 없는 가격 폭등으로 오히려 자산 양극화를 키웠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 2년이 지나면서 국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 기업들도 대·중소기업,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코로나19에 고령화와 저성장이라는 구조적인 문제까지 겹치면서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양극화는 임금 소득과 일자리, 자산 및 주거 곳곳에서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공약도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지속적인 성장과 함께 양극화 해소로 귀결되는 이유다.
특히 여야 양 강 후보는 5년 동안 각각 300조 원 이상, 266조 원(한국메니페스토실천본부 질의 응답 기준)을 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돈풀기’만으로 양극화는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해법이 없다면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더구나 여야 후보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정작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복지 확대와 이를 위한 돈풀기에도 결국 증세가 필요하다는 불편한 진실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저부담 고복지는 가짜 희망이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일 뿐이다.
대선 이후가 걱정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글로벌 긴축 파도에 인플레이션 등 유례없는 초대형 복합 위기가 몰려 오고 있다. 그럼에도 여야 후보는 경제의 마지막 보루인 나라 살림을 걱정하기는커녕 돈 풀 궁리만 하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나라 곳간은 더 비어 가고 결국 국채를 찍어 메우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 뻔하다.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중장기 정책도 민생만큼이나 대선 국면에서 소외되고 있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정책이나 디지털 대전환에 따른 노동 개혁, 기후 위기 대응 등은 네거티브 공방에 가려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양극화 해소가 선거 때만 반복되는 선심성 구호여서는 안 된다. 이번 대선에는 마땅히 투표할 후보가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국민의 권리인 투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선택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꾼다. 가짜 희망에 농락당하지 않으려면 제대로 된 선택을 하는 수밖에 없다. 낡은 정치를 타파하는 책임은 결국 국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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