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남성 골퍼가 있다. 그의 이름은 ‘미스터 핑(Mr. Ping)’. ‘핑 맨’이라고도 하는데 미스터 핑으로 불리길 원한다. 그게 좀 더 정중하게 들리기 때문이란다. 작은 키에 뚱뚱하기까지 하다. 유행에 한참 뒤떨어진 중절모를 쓰고 퍼팅을 하는데 실력이 그리 뛰어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는 이 남성을 가장 신뢰하는 듯하다. 우즈의 퍼터 그립을 보면 항상 이 남자가 보이니 하는 말이다.
우즈가 가장 애용하는 골프 용품은 보통 ‘스코티카메론 뉴포트2 GSS 퍼터’로 알려져 있다. 이 퍼터로 메이저 15승 중 14승을 일궜다. 하지만 우즈가 가장 오랜 기간 변함없이 사용하고 있는 용품은 ‘퍼터 그립’이다.
우즈는 프로 전향 후 대부분 기간에 스코티카메론 퍼터를 들고 다녔지만 핑·오디세이·나이키·테일러메이드 퍼터도 잠깐씩 백에 넣었다. 가끔 다른 퍼터를 사용할 때라도 퍼트 라인을 노려보는 우즈의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립은 언제나 한 종류였다는 걸 알 수 있다. 바로 1970년대부터 명성을 쌓은 핑의 ‘PP58’이고, 이 그립의 상징이 ‘미스터 핑’이다. 이 로고는 현재 핑의 다른 제품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우즈가 PP58 그립을 사용하지 않은 메이저 우승은 1997년 마스터스(스코티카메론 그립)가 유일하다. 2020년 US 오픈 때는 램킨의 퍼터 그립으로 바꿔 들고 나왔다. PP58은 1970년대부터 유명했지만 현재 투어에서 이 제품을 사용하는 선수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최신형 그립도 많은데 우즈는 왜 이 오래된 유물을 고집하는 걸까.
고무 재질인 PP58은 과장해서 보면 끝이 권총 손잡이 모양으로 살짝 휜 ‘피스톨’ 그립이다. 이런 형태는 우즈처럼 퍼팅 스트로크가 아크(원호)를 그리는 인-투-인 궤도 골퍼에게 적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립이 가늘고, 가벼워 퍼팅 할 때 손의 감이 중요하다. 이에 비해 최근 투어 프로들이 많이 사용하는 슈퍼스트로크처럼 두껍고 무거운 그립은 손목 사용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다. 우즈가 따로 언급한 적은 없지만 주니어 시절부터 손에 익었고 고무의 착 감기는 느낌을 좋아하기에 PP58 그립에 충성도를 보이는 것으로 추측된다. 우즈는 퍼터 제조사를 고려해 그립에 각인된 핑 로고와 미스터 핑을 검게 칠해서 들고 나오곤 했다. 때로는 미처 이 작업을 까먹어 흰색 로고가 그대로 노출되기도 했다.
PP58 그립은 핑골프의 창업자인 카르스텐 솔하임이 디자인했다. 미스터 핑을 만든 건 카르스텐의 아들이자 현재 핑의 회장인 존 솔하임이다. 1967년 찰흙으로 모형을 만든 게 시초다. 미스터 핑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4승을 거둔 에드 피오리(미국)와 바다사자의 이미지를 결합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지만 사실은 1960년대 후반 핑의 플로리다 지역 판매를 담당했던 직원(찰리 페어클로스)을 모델로 한 것이다. 솔하임 회장은 “그 직원이 가장 일반적인 미국 골퍼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우즈 덕에 PP58 그립의 인기도 좋을까. 한국 핑골프 관계자는 “워낙 클래식한 디자인이고 다양한 최신 그립이 출시돼 국내에서 판매량은 많지 않다”며 “미국에서는 우즈 마니아들이 어느 정도 찾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미국 골프 전문 매체 골프닷컴의 표현을 빌리면 PP58은 “가장 위대한 골퍼가 오랜 기간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상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그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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