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되면서 에너지 시장에도 긴장감이 돌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미국 등이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건설 주관사를 제재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추가적으로 러시아 가스와 원유에 대한 제재가 나올 수 있어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천연가스와 원유 가격이 앞으로도 폭등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23일(현지 시간)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설명을 내고 “오늘 노르트스트림2 AG와 그 기업 임원들에 대해 제재하라고 지시했다”며 “이 조치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행동에 대응한 우리 초기 조치의 일부”라고 밝혔다. 노르트스트림2 AG는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건설을 주관한 기업으로 러시아 국영 가스 기업인 가스프롬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이날의 제재는 모기업인 가스프롬을 겨낭한 셈이다. 앞서 독일도 노르트스트림2에 대한 승인 절차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노르트스트림2의 가동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만큼 이번 제재가 당장 에너지 시장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없다. 하지만 러시아가 유럽행 가스관을 잠그는 방식으로 맞불 작전에 나설 경우 에너지 가격이 폭등할 것은 불 보듯 하다. 악시오스는 “러시아는 세계 최고의 석유 및 가스 공급국 중 하나로 유럽은 천연가스 공급의 약 4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며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 폭등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실제 24일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35% 폭등했다. 무디스는 “러시아는 유럽의 가장 큰 가스 공급국으로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완전히 중단되는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긴장이 고조될 경우 이미 몇 달간 급등한 가스 도매 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불안한 것은 원유 시장도 마찬가지다.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이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작전 개시 발표 직후 급등해 지난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에 도달했다. 미국 내 휘발유 가격도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갤런당 4달러를 넘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미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현재 갤런당 3.54달러 수준이다. 유가가 15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미국도 대비에 나서고 있다. 이미 러시아의 천연가스 무기화를 우려했던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은 앞서 여타 가스 생산국들과 함께 유럽에 가스를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앞서 블룸버그통신은 미 당국이 한국·일본을 비롯해 카타르·나이지리아·이집트·인도 등과 가스 생산량을 늘리는 방안을 논의한 데 이어 셰브런·엑손모빌 등과도 관련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인도의 국영 가스 업체 게일은 미국 선적분을 유럽에 판매하는데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이 절차를 더 신속히 처리하겠다는 의사도 미 당국에 전달했다.
미국 행정부는 동맹국들과 함께 전략비축유(SPR) 방출 검토에도 나섰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국제 유가를 진정시키기 위해 일본·호주 등과 함께 전략비축유를 방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최종 결정을 내린 상태는 아니지만 다른 나라와의 공조 방안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으며 방출 시기와 규모에 대한 모델링 작업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휘발유 가격 안정을 위해 전략비축유 방출 의향을 묻는 질문에 대해 “에너지 시장 충격 최소화를 위해 다른 나라들과 함께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내놓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 동맹국인 일본도 비축유 방출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한 관리는 24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요청하면 다른 회원국들과 함께 비축유 방출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앵거스 테일러 호주 에너지 장관도 이날 성명을 통해 IEA·미국과 함께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 동향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면서 유가 안정을 위해 전략비축유를 방출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테일러 장관은 국제적인 유가 급등을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 미국·IEA와 함께 국제 유가 급등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2일 IEA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IEA 회원국들의 원유 비축량은 전략비축유 15억 배럴을 포함해 41억 6000만 배럴 정도였다.
러시아도 유럽행 가스가 전면 차단될 경우 큰 타격이 예상된다. 이코노미스트는 가스프롬이 유럽행 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하면 하루 2억 300만~2억 2800만 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30%가량이 에너지 판매 수익이라는 점에서 가스 공급 차단은 러시아에도 악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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