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스템 임플란트, 계양전기, 서울 강동구청 등 여러 기관과 기업에서 대규모 횡령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며 경각심도 커지고 있다. 횡령 범죄는 갈수록 늘고 있지만 횡령액을 전부 회수하는 경우는 드문 탓에 이를 악용하는 범죄자들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양형기준을 현실화하고 기업, 기관의 내부 통제를 강화해 횡령을 방지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횡령 범죄, 2020년만 6만건…피해액 2조 7376억원 중 회수한 돈 0.04% 불과
26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횡령 범죄는 지난 2014년 3만 8646건에서 2017년 5만 2610건, 2020년 6만 539건으로 증가 추세다. 2020년 발생한 횡령 범죄의 총 피해액은 2조 7376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 중 회수한 금액은 1312억원으로 전체 피해액의 0.04%에 불과하다. 피해액을 전부 회수한 사건도 7953건으로 전체 사건 가운데 13%에 그쳤다.
은닉·차명재산 찾기 어려워…여수시 공무원 80억원 횡령도 15억원만 환수
법조계에서는 횡령범이 재산을 해외나 차명으로 은닉해놓을 경우 이를 회수하기가 어렵다고 평가한다. 김태연 태연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액수가 큰 횡령 사건들은 피의자들이 장기 복역을 감수하고서라도 재산을 여러 방식으로 은닉해놓는 경우가 많아 전액을 회수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현삼 서한법률파트너스 변호사도 “법원에서 추징 명령을 내리더라도 재산이 실제로 없으면 집행을 할 수가 없다”며 “가족 재산이 있다고 하더라도 해당 재산이 횡령범 소유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절차가 있어 회수가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여수시에서도 2012년 시청 공무원이 80억 원을 횡령하는 사건이 벌어졌지만 지난해 말까지 환수한 금액은 15억 원 뿐이다.
수사기관으로서는 기소 전 몰수, 추징 보전보다는 처벌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있다. 기소 전 몰수, 추징 보전은 범죄자가 기소되기 전에 몰수 대상 재산을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은 시간에 쫓겨가며 수사를 하고 영장청구권도 없다보니 횡령 재산을 적극적으로 발견해서 몰수, 추징 보전을 신청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수사실적뿐만 아니라 범죄수익 환수 실적에도 인사고과상 이익을 주는 등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최근 경찰과 검찰은 범죄수익 환수 부서를 확충하고 포상이나 내부 인사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횡령 양형기준, 금융범죄보다 약해…"'범죄 비용'을 이익보다 크게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수사기관의 노력과 별도로 사법부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화이트칼라 범죄 양형기준 관련 연구를 진행한 바 있는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계획범들은 범죄로 인한 이익이 비용, 즉 처벌보다 크다고 판단해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며 “수십억을 횡령해도 그에 상응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면 범죄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데 현재 양형기준은 횡령의 심각성에 비해 단순하고 낮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9년 제정된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300억원 이상의 횡령은 가중시 형량이 7~11년이다. 그런데 이득액이 300억원 이상으로 동일한 증권?금융범죄는 가중시 형량이 9~15년으로 횡령보다 높다. 횡령 범죄의 양형기준 중 가장 높은 기준의 액수가 300억원 이상인 것도 한계로 지목된다.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건이 보여주듯 수천억원대 횡령 사건도 발생하는 만큼 양형기준이 보다 촘촘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이 교수는 “횡령액수가 높아질수록 법원이 온정주의적인 판결을 내린다는 연구도 있어 원칙대로 엄하게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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