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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사면초가에 빠진 한국기업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중대재해법 '벌떼 수사' 잇따라

업무 마비에 수십억 손해 발생

이 와중에 우크라 전쟁 터져

"기업 살릴 특단의 대책 필요"





기업들이 지금 사면초가에 빠져 신음하고 있다. 우선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1월 27일 시행됐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법률 시행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이달 23일까지 발생한 산재 사망 사고 건수는 총 24건, 사망자는 29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사고 18건, 사망 18명보다 오히려 늘어난 수치다.

문제는 수사 주도권 다툼을 하는 것인지 사고가 나면 고용노동부와 경찰, 소방청·환경부·지방자치단체까지 벌떼처럼 달려들어 사고 현장과 본사를 조사하고 압수 수색해 관련 자료를 가져가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는 점이다. 노조까지 덩달아 ‘사고가 터진 기업뿐 아니라 납품받는 원청사까지 수사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최고안전책임자(CSO)를 건너뛰어 곧바로 대표를 입건해 기업 지휘부가 순식간에 붕괴되고 수십억 원의 손해가 발생하는 형국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용부가 지난해 말 ‘근골격계 질병 인정기준 고시’ 개정안을 내놓았다. 즉 조선·자동차·타이어 등 업종에서 용접공·도장공·정비공·조립공 등의 직종에 종사하는 1~10년 이상 종사자가 목·어깨·허리·팔꿈치·손목·무릎 등 6개 신체 부위에 상병이 발생하면 곧바로 산업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규정해 산업 재해 추정 대상 범위를 대폭 늘렸다. 특정 업종의 개선 노력을 무시하고 낙인찍기식 산재 판정이 우려된다. 이렇게 되면 해당 업종 종사자의 80%가 잠재적 대상자가 되고 기업 부담은 연간 수조 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네덜란드 공적연금(ABP)의 자산운용사 APG가 7일 국내 주요 기업 10곳에 ‘탄소 중립 촉구 서한’을 보냈다. APG 아시아 총괄이사는 “한국 기업이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에 충분히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RE100(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촉구하는 캠페인) 가입 등을 고려해달라는 취지라고 한다. 서한의 요지는 탄소 배출 감축 전략의 내용과 달성 여부 평가, 보다 적극적인 탄소 배출 감축 선언과 실천 계획 발표 요구다.



이 서한은 다소 뜬금없다. 서한을 받은 10곳은 대부분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가 인정한 기후변화 대응 우수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CDP는 RE100과 파트너십 관계를 맺고 있으며 전 세계 주요 상장사의 온실가스 배출 정보 등을 분석·평가하는 대표 기관이다. 2021년까지 삼성전자는 13년 연속, LG디스플레이는 6년 연속, LG유플러스는 8년 연속, SK㈜·SK텔레콤·LG화학·롯데케미칼은 2021년 탄소 경영 섹터 아너스상을 각각 수상했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이래 CDP 코리아 명예의 전당 플래티넘 클럽에 가입돼 있다.

SK㈜·SK하이닉스·SK텔레콤·SKC·SK머티리얼즈·SK실트론 등 SK그룹 6개 사는 2020년 12월 국내 기업 최초로 RE100에도 가입했다. 삼성전자는 2018년 미국과 중국, 유럽 지역 모든 사업장에서 100% 재생에너지 전력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했고 2020년에 목표를 이뤘다.

국내 재생에너지 전력이 불충분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기업 탓이 아니라 한국 전력 시장 구조 때문이다. 한국은 현재 에너지원 공급원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7.1%에 불과해 네덜란드 24.8%, 미국 19.8%에 훨씬 못 미친다. RE100을 달성하려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지난 5년 내내 한국 기업들은 마른 수건을 짜듯 버텨왔다. 이제 거의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이 와중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터졌다. 기업을 살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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