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소매 붉은 끝동'(이하 '옷소매')에서 소심하고 순한 궁녀 영희 역으로 눈도장을 찍은 배우 이은샘이 '지금 우리 학교는'을 통해 180도 다른 모습으로 연기 변신을 꾀했다.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으며 불량한 얼굴로 전작과 다른 매력을 뽐낸 그는 자신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배우다.
이은샘이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극본 천성일/연출 이재규/이하 '지우학')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한 고등학교에 고립된 이들과 그들을 구하려는 자들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을 겪으며 벌어지는 이야기. 이은샘은 좀비 사건 이후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하기 위해 애쓰는 박미진을 연기했다. 이은샘이 '지우학'에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 건 배우 조이현의 권유 때문이었다.
"조이현과는 드라마 '복수노트'를 함께하면서 친해졌는데, 저한테 오디션 정보를 알려줬어요. 오디션을 봤고 2주 만에 합격했다는 결과가 나와서 '지우학'에 합류하게 된 거죠.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조이현에게 전화해서 '우리 이제 맨날 볼 수 있겠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붙는 신이 후반부에 조금만 있더라고요. '우리 언제 만나나'하면서 촬영하다가 나중에 만났을 때 마냥 좋아했던 것 같아요. 조이현 덕분에 다른 출연자들과도 더 많이 친해질 수 있었고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마음 편했죠."(웃음)
촬영은 '지우학'이 앞섰으나 방송은 '옷소매'이 먼저였다. 대중은 이은샘의 여린 연기를 먼저 보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나중에 보게 된 상황. 이은샘은 '지우학'이 '옷소매' 다음에 나온 게 오히려 잘 된 거라고 말하며 미소를 보였다. 또 작품이 연달아 큰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원래는 '지우학'이 '옷소매'보다 더 빨리 공개되는 거였어요. 강렬한 캐릭터에서 여린 캐릭터로 바뀌면 사람들이 혼동스러울까 봐 걱정했죠. 그런데 시기가 바뀌면서 여리다가 강해지더라고요. 오히려 이게 잘 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캐릭터가 갑자기 확 변해서 낯설어 하면 어쩌나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반응이 좋아서 감사하죠. 저 스스로 연기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시기가 좋아서 칭찬을 받을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이은샘은 정반대의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변화를 주기 위해 애썼다. 영희는 차분하게 보이도록 했고, 미진은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로 표현하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은샘이 지닌 고유의 매력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은샘에게서 발랄함을 빼면 영희가 돼요. 톤을 최대한 낮춰서 차분하게 말하려고 했어요. 미진의 경우는 조금 더 템포를 빠르게 하면서 대사를 했고요. 또 미진은 제게 없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어서 눈빛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날카롭게 눈을 뜨는 연습을 했는데, 화면을 보고 저도 놀랐어요. '내 눈빛이 이렇게 차가울 수 있구나' 싶었죠. 주위에서 '저한테 정색하면 진짜 무섭다'고 했는데, 이제 이해가 가요."
박미진은 늘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욕쟁이 캐릭터다. 좀비 사태 이후 극한의 상황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욕을 더욱 많이 사용하게 된다. 박미진의 욕을 두고 해외 팬들이 "한국의 욕에 대해 잘 알게 됐다"고 할 정도. 이은샘은 박미진을 연기하면서 의도치 않게 욕이 늘어 고민이라고.
"요즘은 살짝 빠져나오긴 했는데, 박미진을 연기하기 전보다 확실히 입이 거칠어진 것 같기는 해요. 제가 원래 엄청 소심한 성격이라 제 의견을 잘 얘기하지 못했는데, 박미진을 만나면서 마음이 열린 것 같아요. 이후로 제 의견도 잘 이야기하게 됐으니까요. 삶에 대한 당당한 태도가 생긴 것에 대해서는 박미진에게 고마워요."
"외국에서 제 별명이 욕이더라고요. 그만큼 제가 찰지게 연기했다는 뜻이겠죠? 사실 박미진의 분량이 작품에서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욕 때문에 해외에 뉴스까지 났다고 해요. 그 부분에서는 매우 뿌듯하죠. 뭔가 한국 욕을 최초로 알린 느낌이라 기분이 좋아요."(웃음)
관련기사
박미진은 욕을 자주 사용하는 것과 별개로 대학과 수능 등 입시 고민도 꾸준히 털어놓는다. 욕과 수능이 공존하는 그의 캐릭터는 자체로 반전 매력을 지녔으나 이은샘은 제대로 연결되지 않으면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사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박미진이 센 캐릭터인데 너무 입시에 매달리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이 캐릭터를 제대로 알아주지 못할까 봐 걱정됐죠. 그런데 전국의 고3들이 박미진의 마음을 이해하시더라고요. 욕을 하면서 시원하게 내뱉는 것 자체가 시원하다고 해주셔서 안심이 됐어요."
"저도 입시를 했는데, 결과가 좋지 못했어요. 제 인생에 가장 힘든 시기를 꼽으라면 당연히 고등학교 3학년에서 스무 살로 올라가는 입시 시기예요. 그때는 무슨 말을 들어도 위로가 안 됐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를 왜 그렇게 받았나' 싶을 정도로 괜찮아졌어요. 고등학교 3학년들에게도 '대학이 꿈의 길은 아니니까 너무 기죽지 말고 결과가 나쁘더라도 또 도전하면 되니 자책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이은샘의 학창 시절은 박미진과 정반대였다. 친구들과 열심히 놀았고, 공부에 재미를 붙이면서 공부도 열심히 했다. 또 아역 배우로 활동하면서 연기까지 병행했으니 후회 없는 학창 시절이었다. 촬영 때문에 학교를 못 가는 게 아쉬웠을 뿐.
"고등학교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전 학교 다닐 때 후회 없이 놀았고 공부도 했거든요. 그래서 미련이 전혀 없었죠. 그런데 '지우학'을 하면서 다시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니까 등교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조금 미련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아요. '조금 더 즐겁게 지낼걸'하면서 말이죠."
2007년 아역으로 데뷔한 이은샘은 어느덧 데뷔 16년 차를 맞았다. 이은샘이 오랜 세월 배우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호기심 덕이었다. 해보고 싶은 게 많은 이은샘은 연기를 하면서 다양한 캐릭터와 직업을 체험하면서 큰 매력을 느낀다고. 또 자신의 성격이 아닌 새로운 자아를 이끄는 것도 재밌는 작업이었다. 전혀 다른 영희와 박미진을 연기한 것처럼.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다가 '옷소매'와 '지우학'으로 연달아 성과를 낸 이은샘은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연기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항상 초심을 가슴속에 새기면서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바랐다.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을 하다 보면 언젠간 믿고 보는 이은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연기력 논란 없는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에요. 인간적으로도 초심을 잃고 싶지 않아요. 친구들에게 연락이 많이 오는데, 다들 '떴다고 변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친구들이 저를 위해 준다고, 제 얘기를 안 한대요. 제 얘기를 하면 사인을 요청할 수도 있고, 전화를 요구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를 배려해 주는 건데 전 서운해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으니 자랑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친구들에게도 변함없는 이은샘이 되고 싶어요."(웃음)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