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힘들었다. 경쟁하고 이겨야 살 수 있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싫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다. 도시를 떠나 바다를 건너 나만의 세계를 완성할 수 있는 섬 제주로 왔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마을 앞에 펼쳐진 제주 평대리에는 육지에서 내려온 3명의 MZ세대 동거인이 산다. 청년 공동체 ‘프로젝트 그룹 짓다’를 이끌고 있는 40대 초반의 조준희·박정숙 부부와 20대 김지수 씨. 각각 무역회사·공공기관·대기업 등 남부럽지 않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섬으로 내려왔다.
28일 평대리에서 만난 이들이 제주에 내려온 이유는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다. “우리는 모두 육지에서 왔습니다. 도시에서의 삶은 외롭고 지친 삶의 연속이더군요. 다른 사람을 짓밟고 이기려고 사는 삶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2인 3각’ 경기처럼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면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제주를 택했습니다.”
이들이 제주를 찾은 시점은 각각 다르다. 조 씨는 지난 2014년, 박 씨는 2016년에 내려왔다. 김 씨가 합류한 것은 이로부터 3년 후. 정착 시점은 모두 다르지만 이들의 지향점은 공동체 이름처럼 ‘짓다’로 모아진다. 농사를 짓고, 문화를 짓고, 관계를 짓는다는 의미다. 조 씨는 “청년들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통해 상상과 실험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고 선택권이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지점”이라며 “혼자 하기에는 부족하니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시에서 왔다고 하면 대부분 카페나 음식점·펜션 등을 생각하지만 도시의 삶을 포기한 이들은 다르다. 땀 흘려 농사를 짓는다. 경작면적도 4년 전 330㎡에서 지금은 1만 6500㎡까지 늘렸다. 주 생산품은 감자와 당근과 같은 뿌리 작물들. 당연히 노동의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종일 밭을 매다 보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이모작을 하다 보니 쉴 틈도 별로 없다. 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다. 평대리가 속해 있는 구좌읍은 물 빠짐이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좋고 바람이 심한 곳이다. 논농사나 감귤 재배가 힘든 이유다.
농사를 택한 이유를 물었다. 농사만이 가지는 매력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박 씨는 “농사는 아주 평등하다. 일한 만큼 대가를 돌려준다. 떳떳하게 할 수 있는 영역이 바로 이것”이라며 “여러 명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것도 농사를 택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지역사회에 정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디자이너니, 연구원이니 직업을 말해도 원주민들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농사는 다르다. 수확은 언제 하는지, 잘 자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농부의 언어로 얘기하면 모든 것이 통한다. 카페나 펜션을 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경험이다.
물론 종일 농사만 짓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중단되기는 했지만 도시락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월간 도시락’, 2년째 진행하고 있는 시골 마을 인문학 행사 ‘칸트의 식탁’, 돌봄 농장도 하고 있다. 제주 지역 화폐에 대한 책도 낸 적이 있다. 모두 함께하는 삶을 위한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사회’를 꿈꾼다. 정상적으로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하기 힘든 현대 사회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김 씨는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바에야 현재를 가치 있게 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자고 생각했다”며 “자신의 한계를 실험하거나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고 전했다.
평대리의 청년들은 행복할까. 이들은 그렇다고 답한다. “감자 수확기에는 도와주겠다고 육지에서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새로 건물을 지을 때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흙을 다져주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에 희열까지 느낍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