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후 3시30분께 강원도 속초시 속초관광수산시장 앞.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유세차에 올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비판 등을 골자로 한 연설을 쏟아내고 있었다.
유세차에서 5m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아 윤 후보의 연설 내용을 받아치던 중 빨간색 바탕의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3.9 대선공명 선거는 당일투표로 이룹시다’. 부정선거 가능성이 있는 오는 3~4일 사전투표는 건너뛰고 3월 9일 본투표 때 투자하자는 부정선거론자들의 메시지를 담은 스티커였다. 이는 대표적인 부정선거론자인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조작을 통한 부정선거가 발생할 위험이 있으니 사전투표를 하지 말고 당일투표를 하라”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스티커를 든 사람은 노년의 여성 세 명이었다. 이들은 윤 후보를 지지하는 커다란 플래카드를 붙잡고 있었다. 또 윤 후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빨간 스티커를 힘차게 흔들며 열렬한 지지를 표했다.
윤 후보는 연설 말미에 이 스티커 메시지와 정반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여러분께 한 말씀만 더 올리겠다”며 사전투표 독려 메시지를 꺼냈다. 그는 “우리 국민 여러분께서 지난 2020년 4.15 총선에 대해 많은 부정의혹을 가진 분들이 계시다”며 운을 띄웠다. 이에 지지자들 사이에서 “맞습니다”라는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어림잡아도 수십 명이 같은 목소리를 냈다.
윤 후보는 사전투표 우려를 불식하려고 애썼다. 그는 “저희 당에서 공명선거감시단을 조직해서 철저히 감시하겠다”며 “3월9일 당일만 투표해서는 제대로 투표할 수 없다. 사전 투표를 꼭 해달라”고 당부했다.
윤 후보가 이런 메시지를 낸 이유는 국민의힘 주요 지지층인 60대 이상 상당수가 사전투표의 부정선거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어서다. 이들은 사전투표를 건너뛰고 본투표를 할 공산이 크다. 그런데 본투표날까지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 본인이 확진되어 아프거나 감염이 무서워 투표장에 가지 않는 식으로 투표를 포기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윤 후보 득표율에 상당한 손실이 예상된다.
윤 후보 유세가 끝난 뒤 스티커를 든 지지자들을 찾아 나섰다. 윤 후보와 악수하기 위해 유세차로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지지자들을 시야에서 놓쳤다. 수 분을 찾아 헤멨으나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유세장 중간에 놓인 빨간 단상이 눈에 들어왔다. 단상 위에는 해당 스티커가 7개 놓여 있었다. 유세가 끝난 뒤 땅바닥에 버려진 스티커를 당 관계자들이 모아놓은 것으로 보였다. 강성 부정선거론자들이 적어도 7명 이상 왔던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빨간 패딩을 입고 태극기를 든 한 남성이 눈에 띄었다. 그에게 다가가 ‘사전투표를 할 것인가’고 물었다. “시간 되면 사전투표 할텐데 가급적 본투표를 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속초 태생인 김명회(65)씨였다. 그는 ‘후보가 사전투표를 해달라지 않느냐’라는 말에도 “가급적이면 본투표 할 것”이라고 입장을 고수했다. ‘부정선거가 왜 우려되느냐’는 질문에 “(2020년) 4.15 총선도 의심스러운 데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또 ‘주변에 그런 분들 많으냐’는 질문에 “네”라고 했다.
유세장에서 만난 공무원 출신 김청운(65)씨도 주변에 부정선거론자들이 상당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저는) 부정선거 인식은 별로 없다”면서도 “그런 사람들 많이 봤다. 왜냐면 황교안씨가 (주장)해서”라고 말했다. 이어 “제 주변에도 그래서 본투표하시겠다는 분들도 있는데 사전투표 한다는 분들도 많이 있다”고 했다.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힘 지지자의 사전투표 기피 답변은 두드러진다. KBS·한국리서치가 지난달 24~26일 조사한 결과 민주당 지지자 45.6%, 국민의힘 지지자 19.5%가 사전투표를 하겠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지지자의 사전투표 기피는 부정선거를 의심하는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에 국민의힘은 사전투표 독려 총력전에 나섰다. 윤 후보는 지난달 27일 경북 포항 죽도시장 유세에서 자신도 사전투표 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부정선거를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당일 투표만 하겠다고 하시는데 그러다보면 투표를 못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후보는 이날 강원도 지역 5곳 유세 중 4곳에서 사전투표 독려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특히 동해시 유세에서는 “(정부가) 선거 날에 코로나 확진자 수십만 나온다고 발표해서 당일 날 투표 못하게 막을 수 있다”는 일종의 음모론까지 거론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일 확대선거대책회의에서 “마지막 변수는 확증하는 확진자 수에 따른 참정권 제약”이라며 “국민 여러분은 4~5일 진행되는 사전투표에 적극 참여해서 대한민국 바꿀 기회를 놓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윤재옥 상황본부장은 “후보와 중요 당직자 등은 사전투표를 원칙으로 정했다”며 “SNS를 통해 사전투표한 걸 홍보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이들 뒤 벽면에는 ‘윤석열도 사전투표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에 맞선 부정선거론자의 사전투표 거부 독려도 이어질 전망이다. 부정선거론자들이 QR코드가 표기된 사전투표 용지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가운데 사전투표를 중단시켜달라는 행정소송이 이날 각하됐기 때문이다. 황 전 총리 등 사전투표 의혹을 제기하는 측은 선관위가 사전투표 용지에 고유 일련번호를 표시하기 위해 QR코드를 사용하는 것을 대표적 근거로 지적한다. 선관위는 QR코드를 통해 투표자를 역추적하거나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허위사실이라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이 사전투표까지 남은 3일여 동안 부정선거론자들의 마음을 얼마나 돌아세우느냐는 이번 대선의 승부를 좌우하는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부정선거론자들은 국민의힘 강성 지지층인 만큼 본투표 날 확진자가 급증하거나 자신이 확진된다 해도 투표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서울경제와 인터뷰한 김명회씨는 ‘코로나19에 걸려도 본투표장에 나갈 건가’라는 질문에 “네. 상관은 없다”며 코로나를 개의치 않는 입장과 투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동시에 피력했다. 본투표날 코로나19 확진·격리 유권자는 오후6시부터 7시30분까지 투표 가능하다.
/동해·강릉·속초·춘천=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