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민간인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총구를 겨누자 ‘러시아 보이콧’을 선언하는 글로벌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3위인 애플이 러시아에서의 제품 판매 및 서비스 제공을 중단했고 러시아인이 선호하는 브랜드 3위인 나이키도 판매 중단을 선언했다. 비자·마스터카드 등도 러시아 은행 결제를 차단하는 등 러시아 국민들이 글로벌 소비 시장에서 빠르게 퇴출되는 모양새다. 러시아 국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기업들의 탈(脫)러시아가 가속화하자 러시아인이 블라디미르 푸틴을 대통령으로 둔 대가로 이른바 ‘푸틴세(稅)’를 치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점차 누적되는 러시아 국민들의 불만이 반(反)푸틴 여론으로 이어져 우크라이나를 향한 공격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신중한 낙관론도 제기되고 있다.
1일(현지 시간) 미 경제 방송 CNBC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주부터 러시아로의 수출을 막았으며 러시아 내 제품 판매를 잠정 중단했다”고 밝혔다. 또 “(결제 시스템인) 애플페이를 포함한 서비스를 제한했으며 러시아 밖 지역에서 러시아 국영 매체인 RT뉴스와 스푸트니크뉴스를 내려받지 못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애플은 최근까지 러시아에서 사업을 확장해왔다. 지난달 초에는 모스크바에 현지 사무실을 내고 인력 채용에 나서기도 했다. 러시아 내 일간 활성 이용자 수가 50만 명을 넘는 해외 빅테크 기업은 러시아에 현지법인을 열어야 한다고 규정한 ‘상륙법’에 따른 조치로 주요 빅테크 기업 가운데는 애플이 가장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범죄’ 수준의 무차별 공격을 하며 국제적인 비판 여론이 커지자 180도 전략을 수정해 러시아 보이콧으로 돌아섰다.
지난해 삼성과 아디다스에 이어 러시아인이 선호하는 기업 3위로 꼽힌 나이키도 러시아 내 판매를 중단했다. 러시아 PC 시장 점유율 1위(18%)인 HP 역시 이번 주부터 러시아로의 수출을 중단했으며 포드는 추후 공지가 있을 때까지 러시아에서 사업을 즉각 중단하고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10만 달러 규모의 기부금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비자와 마스터카드도 대러 제재에 따라 자사 네트워크에서 러시아 은행을 퇴출한다고 발표했다.
전날 디즈니와 워너브러더스 등이 러시아에 콘텐츠 제공을 중단한다고 선언하는 등 문화 콘텐츠 공룡에 이어 글로벌 소비 기업들도 앞다퉈 ‘러시아 손절’에 나서자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러시아 국민의 대정부 불만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 시장에서 아이폰에서 에어조던(나이키 신발)까지 사라지는 것을 소비자들이 무시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보이콧은 러시아 은행이나 가스관을 제재하는 것보다 경제에 타격을 주지는 않지만 수백만 명의 러시아인을 상호 연결된 세계에서 고립시키는 강력한 펀치가 된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25일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가 “2022년에 탱크와 미사일에 맞설 무기는 혁신 기술”이라며 애플과 구글·메타 등에 러시아 보이콧을 요구한 이유이기도 하다.
러시아 국민들의 불만이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공격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신중론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NYT의 토머스 프리드먼 칼럼니스트는 “모든 러시아인이 푸틴을 대통령으로 둔 대가로 푸틴세를 지불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국민들의 반발이 푸틴을 저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실제 러시아 내 반전 시위는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날도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져 러시아 경찰이 즉각 체포에 나섰다. 러시아 비정부기구 ‘OVD-인포’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전면 개전 이후 발생한 러시아 내 반전 시위에서 체포된 사람은 최소 6821명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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