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향해 ‘주권국가의 존엄과 자주권’을 침해하지 말라고 외치던 북한이 정작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러시아가 북한의 우방인데다 반미 공동전선을 굳건히 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북한은 2일(현지시간)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및 철군 요구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 결의안은 찬성 141표, 반대 5표, 기권 35표로 가결됐다. 미국과 대립 중인 중국마저 기권표를 던진 ‘신중한 표결’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공연히 지지한 셈이다.
북한의 이런 자세는 그간 대외적으로 내세웠던 ‘다른 나라의 자주권 침해 불가’ 입장과 모순되는 이중적인 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은 평소 미사일 시험발사 등 자신의 무력 시위에 한미일 등 주변국이 우려할 때마다 “국방력 강화는 주권국가의 합법적 권리”라는 논리를 펼쳤다.
북한이 침략국 러시아 편을 드는 이유는 북한의 외교정책 핵심이 반미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 문제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다양한 제재를 받는 상황이지만, 국방력 강화를 이유로 미국과 맞서는 형국이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달 28일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내놓은 첫 공식 입장에서 “사태의 근원은 전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대한 강권과 전횡을 일삼는 미국과 서방의 패권주의 정책”이라며 미국 탓으로 돌렸다. 특히 외무성은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의 합리적이며 정당한 요구를 무시한 채 한사코 나토의 동쪽 확대를 추진하며 유럽에서의 안보 환경을 체계적으로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이같은 논리는 러시아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으로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불법 침공을 정당화했고, 북한도 이런 논리를 수용해 대외 주장을 펼친 셈이다.
아울러 북한은 러시아의 행위에 ‘침략’이나 ‘침공’ 등의 표현을 일절 사용하지 않은 채 ‘우크라이나 사태’라고만 표현했다. 이를 통해 그간 자신들이 주장해온 ‘주권국가’ 논리와의 정합성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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