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같이 갑시다’로 유명한 그 리퍼트 전 대사가 나한테 친구 신청을 했다고?”
지난달 24일 기자는 유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서 마크 리퍼트 전 대사로부터 친구 신청을 받았다. 이전부터 미디어에서 많이 봤던 거물이 내게 직접 친구신청을 했다는 생각에 솔직히 말하면 영광스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곧바로 페이스북 메신저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한국 친구, 반가워 가족들은 잘 지내지?”하며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내가 바빠서 SNS를 잘 하지 않는데 너는 참 운이 좋다. 이건 너에게 위대한 기회가 될거야. 하느님이 너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사칭계정은 “한국에서 내가 이루기 위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자주 연락하자"고 말했다.
기자는 서울경제신문의 사건팀장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을 출입하며 서울시 전체에서 발생하는 사건기사와 국내 사회현상을 글로 풀어내는 게 직업이다. 인스타그램을 다이렉트메시지(DM)를 통해서 ‘내가 지금 중동에 근무하고 있는 미군인데 20만달러를 보내야 하는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류의 글은 무수히 많이 받아 받고 신고를 눌렀다. 하지만 기자는 이 사칭계정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솔직히 몰랐다. 그저 ‘외국인들은 하느님 얘기를 많이 하니까’라고 정도만 생각해서 “그래요. 대사님 앞으로 연락 많이 하고 지내요” 답하고 말았다.
사칭계정은 바로 다음날 밤 10시 22분에 페이스북 메신저로 연락을 했다. 그러면서 카카오톡 친구로 추가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카카오톡 아이디는 ‘Ambassadorlippert74’였다.
카카오톡 아이디로 추가하니 리퍼트 전 대사의 얼굴과 가족사진이 떠올랐다. 혹시나 해서 구글로 찾아보니 구글 프로필에 있는 얼굴이었다. 계속해서 반신반의하면서도 ‘이 사람, 진짜 리퍼트 맞는 거 아냐?’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칭계정은 “카카오톡으로 잘 지내냐?”고 물으면 얘기를 시작했다. 자신은 현재 워싱턴DC에 있다며 미국에 방문한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몇 번의 출장경험을 얘기했고 다만 워싱턴에 가본적은 없다고 답했다.
사칭계정은 통해 “자신이 한국에 투자를 하려는데 관련 아이디어를 줄 수 있냐”고 물었다. 한국인들이 자신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큰 사업을 성공시키고 싶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점점 굳어져갔다. 기자가 무슨 로비스트나 컨설턴트도 아니고 대체 어떤 사업 아이디어를 줄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한국 시간으로 자정이 넘어서 자야 한다'며 다음에 얘기를 하자고 하고 이야기를 마쳤다. 다음날인 토요일 관련 계정을 조사해 보니 리퍼트 전 대사의 계정은 따로 있었다. 곧바로 페이스북 친구를 끊었고 카카오톡도 삭제하고 차단했다. 그런데도 마음 한켠에는 기자 특유의 호기심 꿈틀거렸다. ‘사칭계정은 대체 나에게 어떤 식으로 돈을 가져가려고 하는 걸까? 왜 본색을 드러나 곧장 돈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달라고 하는 걸까'라고.
아니나 다를까. 사칭계정은 페이스북에서 다시 기자에게 친구 신청을 했다. ‘대체 이 사기꾼이 내게 뭐라고 말하나 어디 한번 보자’라는 생각에 친구 신청을 받아줬다. 사칭계정은 ‘왜 친구를 끊었냐며 다시 카카오톡 친구를 신청하라'고 말했다. 기자는 “대체 얼마를 투자하려고 하냐. 나는 니가 진짜 리퍼트가 아닌 것 같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칭계정은 전체 금액은 350만달러이고 사업이 시작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내게 매출의 30%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350만달러면 한화로 421억원이다. 리퍼트 전 대사가 421억원을 한국 사업에 투자한다고? 대체 왜? ‘차라리 주식에 투자하거나, 사업구상이 필요하면 컨설팅 펌에 연락하는 게 맞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빨리 대답 안하면 채팅방에서 나가겠다’는 기자의 말에 사칭계정은 화상통화를 해도 된다고 말했다. 살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더라도 사기꾼과 통화를 하는 건 겁이 났다. 또 딥페이크가 워낙 잘돼 있는 터라 그의 얼굴로 위장을 하고 나와 통화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는 사칭 계정에게 “니가 진짜 리퍼트라고 해도 컨설팅 회사에 연락하는 게 나을거야”라고 말했다. 이에 사칭계정은 “지금 나 갖고 노냐. 너무 무례하다. 지금 얼마나 좋은 기회를 날리는지 아냐?”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기자는 리퍼트 전 대사의 진짜 계정을 보내며 “이게 진짜 계정이라고 당신은 진짜 계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칭계정은 “그 계정도 내 것이고 미국 미디어에서 통제하는 것”이라는 이상한 답을 했다. 이미 기자는 페이스북에 리퍼트 전 대사의 계정이 무려 10개 가량 있다는 걸 확인한 후였다.
이제 기자의 머릿속에는 수수료를 보내달라는 확실한 증거를 잡아보자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분명히 요구할거다. 분명히 요구한다'고 계속 되뇌었다.
기자가 “나는 기자다. 컨설팅 펌에 알아보는 게 낫다. 당신 현재 삼성전자 미국 지사에 다니고 있고 아는 친구가 많지 않냐”고 물으니 사칭계정은 “새 직장 일이 워낙 많고 워싱턴DC에 있어서 대신해주면 안되겠냐. 니가 안되면 친구라도 알려달라"는 얼토당토 않은 말을 했다. 결국 사칭계정은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서 투자 제안서를 보낼테니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한다”고 대화를 마쳤다. 이렇게 사칭계정은 기자의 수면을 빼앗아갔다.
지난달 28일 출근한 기자는 삼성전자 측에 확인을 시작했다. 돌아온 답변은 구글 검색을 통해 나오는 계정이 진짜라는 답을 들었다. 기자가 사칭계정에 보냈던 그 계정이 진짜였다. 가짜 계정임을 거듭 확신한 후 카카오톡을 차단하자 ‘나이지리아에서 가입한 번호’라는 주의 문구가 나타났다. SNS 친구 요청으로 제안한 투자가 국제 사기 집단의 행태라는 게 확실하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기자가 만난 경찰 관계자는 “한국계 미군과 같이 연인 관계를 미끼로 한 로맨스 스캠이 비교적 널리 알려지자 국내에서 호감도가 높은 리퍼트 전 대사를 사칭한 사기 수법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며 “투자를 위해 송금 수수료 등이 필요한데 이를 보내 달라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진이나 프로필은 얼마든지 도용이 가능한 만큼 SNS상에서 외부인이 접근해 오는 것을 경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자는 의문이 들었다. ‘하필이면 왜 나에게 친구신청을 했을까. 분명히 내가 기자라고 밝혔는데’
기자의 페이스북 계정을 살펴보니 직업란에 표시가 안돼 있었다. 사기꾼들은 기자라고 밝혔음에도 잡은 고기를 놓칠 수 없어서 계속 말을 걸었던 것이다. 독자 여러분도 보이스피싱, 메신저피싱에 속지 않으시길 바란다. 가장 중요한 돈과 시간을 빼앗아 버린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