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쪽에서 수도 키이우(키예프)로 진군할 채비를 갖춘 한편으로 서쪽 지역에 포격을 가하며 서부 국경을 넘으려는 피란민에 대한 안전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게다가 체르노빌 원전과 자포리자 원전을 장악한 러시아군이 원전과 외부 연락을 일부 차단한 데 이어 하르키우(하리코프)의 핵 연구 시설까지 공격하며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프랑스는 러시아에 ‘민간인 안전 보장’ 및 ‘핵 시설 보호’를 요구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이뤄내겠다”고 밝혀 추가 공세를 시사했다.
6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포격을 받았다고 밝힌 핵 연구소 ‘하르키우 물리학·기술연구소’에는 핵 연료 37개가 비치돼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격이 “대규모 생태학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우크라이나가 꾸민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우크라이나 우익 극단주의 단체 ‘아조프 부대’와 우크라이나 보안국이 연구소의 실험용 원자로를 폭파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폭파 후 러시아군의 공격을 당했다고 주장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양측의 엇갈린 주장 속에 일단 방사성물질 누출 등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언제든지 핵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는 점차 고조되고 있다. 이날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러시아군이 (유럽 최대 규모의)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직원들을 지휘하고 있다”며 “일부 이동 통신망과 인터넷을 차단해 원전 직원들과의 의사소통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IAEA는 체르노빌 원전 직원과도 e메일로만 연락이 가능하다며 “통신 악화는 원전 시설을 언제든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지난달 25일 체르노빌 원전, 지난 4일 자포리자 원전을 장악한 데 이어 현재는 우크라이나 제2 원전이 위치한 도시 므콜라이우로 진군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105분간 이어진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핵 시설 안전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원전 안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IAEA의 3자 회담 개최에 동의하면서도 “협상이든 전쟁이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우크라이나에서의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며 추가 공격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러시아가 국경 병력의 95%를 우크라이나로 투입해 공세를 강화하는 가운데 수도 키이우 장악을 위한 러시아군의 진군도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군은 이날 “러시아가 브로바르스키와 보리스필 지역을 통해 키이우 동쪽 외곽으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싱크탱크 미국 전쟁연구소도 “러시아군이 병력 재편성을 위해 주말 동안 대규모 공세를 벌이지는 않았다”면서도 “키이우와 남부 오데사에 대한 공격이 48시간 이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특히 러시아가 키이우 등에서 벌일 전투에 대비해 시리아 전투 용병까지 모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민간인을 상대로 하는 처참한 시가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징집병이 대부분인 러시아군은 시가전 역량이 떨어지지만 시리아 전투원들은 (내전으로) 10년 가까이 시가전 경험을 쌓아왔다”며 러시아군의 전력이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리아 용병 중 일부는 이미 러시아군에 합류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러시아군은 서쪽으로도 포격을 가하며 우크라이나 서부 국경으로 향하던 피란민들의 피해를 키우고 있다. 키이우 서쪽 외곽의 도시 이르핀에서는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일가족 4명을 포함해 8명이 사망했다. 키이우의 남서쪽에 위치한 빈니차 공항도 공격을 받았다. 유엔은 지난달 24일 전쟁이 시작된 후 이날까지 민간인 364명이 사망하고 759명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7일 포격을 일시 중단하고 키이우와 하르키우·마리우폴·수미 등에 민간인을 위한 ‘인도적 지원 통로’를 마련한다고 밝혔으나 러시아와 벨라루스로의 대피만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완전히 부도덕하다”며 “우크라이나 국민은 우리 영토로 대피할 권리가 있다”고 대변인을 통해 말했다. 또 “러시아가 대외적인 홍보를 위해 (피란민의) 고통을 이용하려고 한다”고 반발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