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통해 자신의 감정 상태를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지요. 꼭 쓰지 않아도 하루의 기분을 손쉽게 기록하는 일기 애플리케이션이 정신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블루시그넘의 윤정현(25·사진) 대표는 최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국적·인종과 상관없이 심리 상태와 일상을 남기고 싶어하는 공통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도구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지도를 높일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블루시그넘의 일기 앱 ‘하루콩’의 현재 누적 글로벌 다운로드는 110만 건을 웃돈다. 출시 10개월 만인 지난 1월 다운로드 100만 건을 넘어설 정도로 단기간 관심을 끈 것은 편리성 때문이다. 하루콩은 기쁨·보통·우울 등을 나타내는 다섯 가지 ‘콩’ 모양 아이콘 선택만으로 기록된다. 집안일, 외출, 건강 여부 등 카테고리를 선택할 수 있고 한 줄 쓰기도 가능하다. 쌓인 콩들은 매월 정리돼 한 달간 기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윤 대표는 “일기처럼 매일 써야 하는 부담을 덜고 평균 8개 정도 ‘콩’ 카테고리를 몇 초간 선택하는 것으로 하루 기록을 완성하는 데 초점을 뒀다”며 “일상 앱이지만 개인 데이터를 기반한 서비스인 것도 강점”이라고 소개했다.
사용자는 한 달간 심리 변화를 리포트 형식으로 받는다. 친구와 만나거나 운동했을 때 기분이 좋았다거나 자주 기록한 활동과 연관된 기분 변화 그래프를 보여 주는 방식이다. 유료 서비스는 우울증 등 이상 징후 알림 등 심층적 분석을 제공한다. 그는 “한 달간 기록으로 자신의 감정 패턴을 이해했다는 사용자 반응이 많다”며 “데이터를 바탕으로 심리 자각의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개인에 대한 이해 없이 포괄적인 치유법을 제시하는 정도의 명상 앱들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하루콩으로 하루를 기록하는 사용자는 현재 170여 개국 5만 명 정도. 약 80%가 해외 이용자다. 글로벌 브랜드(DailyBean) 서비스는 8개 국어로 제공된다. 지난해 말 일본·프랑스에서는 구글이 선정하는 ‘올해를 빛낸 일상생활 앱’으로 뽑혔다. 그는 “사용자의 90% 이상이 여성이고 15~25세 연령층이 60%를 넘는다”며 “기분 변화를 추적하는 심리 기법인 ‘무드트래킹’에 관심 있는 젊은 층의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루콩은 기초적 서비스일 뿐 윤 대표의 큰 그림은 ‘디지털 심리 치료제’ 개발이다. 사용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료 영역까지 고도화한 서비스로 정신 건강 콘텐츠 시장에 도전하는 것이다. 실제 병원 임상 시험 결과를 토대로 개발한 심리 가이드 앱을 하반기에 내놓고 음성으로 기록·대화하는 인공지능(AI) 스피커 서비스도 내년에 선보이기로 했다. 그는 “일기는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 전통적이고 보편적 도구”라며 “감정 결핍을 겪는 1인 가구 등에 필요한 콘텐츠를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를 휴학 중인 윤 대표는 고교생 때 이미 ‘폐광 정화 기술’ 스타트업을 세웠을 만큼 창업에 관심이 많았다. 서울대 동기·선후배 3명과 함께 2019년 세운 블루시그넘이 두 번째 창업이다. 원래 1인 가구를 위한 반려 펭귄 로봇 개발에 나섰지만 기술적 한계를 느낀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치유의 가치를 소프트웨어(SW)로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음을 깨닫고 방향을 바꿨다.
중소벤처기업부의 R&D 창업연구개발 과제인 ‘음성 기반 우울증 치료 SW’를 올 상반기 개발할 계획이라고 소개한 그는 “힘들고 지칠 때 가장 먼저 찾는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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