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늘 자신을 증명하라고 말한다. 어쩌면 인생은 능력, 성격, 외모를 증명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도한 증명은 경쟁을 부르고, 경쟁은 때론 증명하는 과정이 주는 즐거움을 잊게 만든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증명의 학문인 수학을 소재로, 조금 모자라거나 돌아가도 괜찮다고 위로하는 작품이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감독 박동훈)는 신분을 감추고 고등학교 경비원으로 일하는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최민식)이 수학을 포기한 학생 한지우(김동휘)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학성은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학생들의 사이에서 인민군이라고 불리며 기피 대상 1호다. 이학성은 어느 날 친구들의 잘못을 뒤집어쓰고 기숙사에서 한 달간 퇴소당한 한지우를 만나게 된다. 우연치 않게 이학성의 수학 능력을 본 한지우.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사교육을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수학을 포기하게 된 한지우는 이학성에게 수학을 알려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걸 극도로 꺼리는 이학성은 한지우를 밀어내지만, 간절한 그의 마음에 결국 수학을 가르쳐 주기로 결심한다. "성적을 위한 수학이 아닌, 그저 수학을 알려주겠다"던 이학성은 차근차근 알려주고, 한지우의 수학 성적은 상승 곡선을 그린다. 그렇게 우정을 쌓던 이학성과 한지우에게도 각각 위기가 찾아온다. 이학성은 북한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한지우는 시험지 유출 사건에 휘말려 전학 가기 일보 직전이다. 이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해답을 찾는 여정에 나선다.
작품은 수학이라는 가진 학문의 순수한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구나 어렸을 때 수학과 처음으로 만나지만, 복잡한 수식 사이에서 절망을 느끼고 좌절한다. 입시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주입식 교육 환경 속에서 수학의 가진 순수한 매력을 다룰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 결국 우리 사회는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라는 단어를 만들면서 수학을 그저 어려운 학문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이학성은 이런 '수포자'인 한지우에게 하나의 수식이 탄생하는 과정을 일일이 계산하며 먼저 수학과 살을 부딪히며 친해지라고 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늘 수학은 우리 주변에 있다"고 말한다. 수학은 굴러가는 자전거 바퀴의 속도, 카페에서 사 먹는 마카롱의 크기, 늘어나는 피자 치즈의 곡선이라고. 이를 받아들인 한지우는 "수학이 이런 줄 알았으면 진작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기뻐한다.
우리 주변에서 수학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건 음악. 음계를 처음 만든 사람이 그리스의 유명 수학자 피타고라스며, 피아노의 건반은 피보나치수열에 따라 만들어졌다. 때문에 작품에서 음악은 중요한 장치로 사용된다. 이학성은 정교하게 수학으로 화성을 쌓았다고 평가받는 바흐의 음악을 즐겨 듣고, 경외한다. 과거의 아픔으로 인해 일상의 행복을 대부분 포기한 이학성이 유일하게 놓지 못하는 것도 바흐의 음악이다. 원의 둘레와 지름의 일정한 비율을 나타내는 원주율은 작품의 메인 음악인 '파이(π) 송'으로 변주된다. '파이 송'은 원주율의 숫자에 음을 붙여 편성된 곡이다. 한지우는 '파이 송'을 듣고 수학의 아름다움을 귀로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또 이학성은 한지우에게 "수학은 옳은 문제에서 옳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가르친다. 이는 비단 수학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우리 삶 전체를 아우르는 대사로 결과만 중시하는 사회에 던지는 경고다. 또 과정은 건너 뛰고, 정답만을 찾는 세상에서 힘들어하던 한지우에게 위로다. 어느덧 한지우는 옳지 않은 문제에 목소리를 낼 줄 아는 학생으로 성장한다. 이학성도 한지우로 인해 위로받는다. 가정의 아픔을 안고, 늘 자신을 숨기기에 바빴던 이학성은 한지우와 함께 세상에 한 발씩 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이들은 함께 음악회에 가고, 식사를 하면서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의 존재의 소중함을 느낀다. 또 한지우에게 수학을 가르치며 순수한 학문이 주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다시 느낀 이학성의 표정은 경이로 가득 차기도.
이들이 나눈 진정한 우정 앞에선 나이는 숫자일 뿐이고, 체제는 사상일 뿐이다. 나이가 주는 허울도 없고, 남북으로 나뉜 사상도 없다. 나이가 많다고 어른이라고 내세우지 않고, 어리다고 미성숙하지도 않다. 그저 수학이라는 언어로 서로를 위로하고 소통하는 친구로만 존재한다.
지친 일상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영화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지나치게 앞만 보고 달리다가 일상의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소소하게 된장찌개 하나를 나눠 먹어도 행복한 이학성과 한지우처럼. 또 앞만 보고 달리다가 과정이 주는 즐거움을 잊지 않았는지도 돌아보게 한다. 하나의 답으로 귀결되는 수학조차 그 과정을 보지 않으면 텅 비어 있는 학문이라고.
이는 최민식과 김동휘의 절제된 연기로 완성된다. 일상의 휴머니즘을 연기한 이들의 표정은 자연스러워 마치 우리 곁에 있는 경비원과 학생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들은 자연스러움 안에서 극이 전개될 때마가 각기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극 초반 삶의 의미를 잃은 눈동자부터 수학으로 하나 될 때 빛나는 얼굴, 서로를 지키기 위해 결심한 초연한 표정까지. 일상의 톤을 유지면서 감정의 스펙트럼은 힘 있게 끌고 간다. Q.E.D(증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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