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 기업의 러시아 제재 위반 가능성을 선제 경고하고 나섰다. 올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앞두고 안정적 성장이 필요한 상황에서 미국과의 무역 갈등 재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석유 등 글로벌 에너지 가격 급등은 이미 중국 기업들에 타격을 주는 상황이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9일 공개된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반도체와 첨단 기술 수출을 금지한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중국 기업들은 문을 닫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러 제재를 위반한 중국 기업을 응징하겠다고 미 고위 관리가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러몬도 장관은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SMIC를 언급하며 “이런 중국 업체들이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장비·소프트웨어 공급을 차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지난달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각종 첨단 기술의 접근성을 차단하는 제재를 강화했다. 한국 등 동맹국들의 협조를 얻어낸 상황에서 관건은 친러시아 행보를 보이는 중국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중국 기업으로서는 서방의 대러 제재에 반대하는 자국 정부의 눈치를 보는 것은 물론 미국의 제재라는 상반된 상황까지 동시에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실제로 미국의 제재가 본격화하면 최근 소강상태에 빠진 미중 무역 전쟁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NYT는 “화웨이 사례가 다시 나올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미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의 신냉전을 각오하고 있다. 다만 중국은 올해 시 주석의 3연임 확정을 앞두고 안정적 경제성장을 실현해야 할 상황이라 미국과의 전면 충돌은 부담이다.
중국은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정부업무보고’에서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5.5% 내외’로 제시했다. 이는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의 예상치 4.8%를 비롯해 국내외 연구 기관의 ‘5% 내외’보다 높다.
한편 9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2월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이 지난해 동기 대비 8.8%를 기록했다고 공개했다. 이는 1월 상승률(9.1%)보다는 낮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석유 등 금수 조치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3월 이후 물가는 더 뛸 가능성이 있다. 반면 중국 내 내수 둔화를 반영해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0.9% 오르는 데 그쳤다.
중국이 전인대에서 과감한 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상하이종합지수가 1.13% 하락하는 등 중국 증시는 3월 2일 이후 6거래일 연속 약세를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은 제조 업체들의 원가 상승 압력을 가중시켜 중국의 경제 성장을 더디게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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