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일인 9일 시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투표를 하기 위해 투표소로 속속 모여들었다. 시민들은 따뜻한 봄 날씨를 맞아 가벼운 옷차림으로 투표소를 찾았다. 삼대가 함께 투표를 하러 오는 등 가족 단위 시민들이 많은 가운데 반려견과 산책길에 투표소를 찾은 시민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공약 보이지 않는 ‘비호감 대선’=대다수 시민은 이번 대선이 공약 검증 없이 후보들의 도덕성, 개인 사생활이 주목받는 ‘비호감 대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투표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 투표소를 찾았지만 정작 직전까지 누구에게 표를 줄지 정하지 못한 시민들도 많았다.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임 모(50) 씨는 “서민·청년·학생들을 위한 정책은 물론 어린 학생들을 과도한 입시 경쟁에서 벗어나게 하는 교육 정책의 방향이 제시됐으면 했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그런 정책들이 대동소이하고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며 “누가 되더라도 큰 기대가 없다”고 말했다.
자녀와 함께 용산구 청파동 투표소를 찾은 40대 이 모 씨는 “이번에는 정말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어서 투표장 앞인데 아직도 머릿속에서 누구를 뽑을지 정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60대 남성 A 씨도 “출근길에 투표하기 위해 잠시 들렀는데 정말 뽑을 사람이 없다”며 “무탈하게 5년이 지나고 다음 대선에서는 뽑을 수 있는 ‘호감 후보’가 나왔으면 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투표 열기는 사그라들지 않은 채 많은 시민들이 연달아 투표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팡이를 짚고 투표장을 찾은 80대 김 모 씨는 “요놈을 뽑으나 저놈을 뽑으나 그놈이 그놈”이라면서 “제대로 된 후보가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투표밖에 없으니 투표라도 하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인생 첫 투표…마냥 설레지만은 않네요”=이날 서울 시내 투표소에는 생애 첫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한 20대 청년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선거 연령이 하향 조정되면서 투표권을 손에 쥔 만 18세 고3 유권자들도 설렘과 긴장된 마음으로 투표소를 찾았다. 이들은 차기 대통령에게 초심을 잃지 않고 사회 통합에 힘써달라고 강조하면서 실업 문제, 젠더 갈등 등 청년 문제 해결에도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성북구에서 만난 서채희(23) 씨는 “첫 대선 투표인데 이번에 던지는 내 한 표에 대한민국의 향후 5년이 달렸다고 생각하니 마냥 설레지만은 않고 긴장도 된다”며 “친구들과 기대하는 마음으로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지금까지 각 당에서 내놓은 공약이 잘 지켜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포구 대흥동 투표소를 찾은 김모(22) 씨는 “첫 대선인 만큼 공약을 보고 나의 미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후보에게 표를 주고 싶었는데 정책이 아닌 인물을 보는 판세가 꾸려져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며 “막상 투표를 하기 전에는 첫 투표라는 생각에 긴장을 잔뜩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나 허탈한 기분까지 든다”고 웃었다. 배모(19) 씨는 “요새 성차별 문제가 너무 심한 것 같다”며 “선거 때만 성차별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관심을 기울여줄 대통령을 원한다”고 지적했다.
◇큰 혼란 없었던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 투표=지난 4~5일 사전투표 당시 투표함 부실 관리 논란이 크게 불거졌던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 투표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일반 유권자 투표가 종료되는 오후 6시가 다가오자 투표소 관리 직원들은 방호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곧 투표소 앞에는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가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큰 혼란은 없었지만 잦은 지침 변경 때문에 현장에서는 혼선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부분의 투표소는 확진자와 격리자를 구분해 대기 줄을 만들도록 했다. 하지만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 마련된 투표소는 확진자와 격리자 구분 없이 대기하도록 했다. 오후 5시 50분으로 정해진 외출 가능 시간을 착각해 10분 빨리 집을 나선 격리자도 있었다. 또 일반 유권자가 투표소에 머물던 오후 6시 전에 ‘외출 안내 문자’를 받지 못한 확진자가 별도의 안내를 받기 위해 투표소에 들어가는 등 혼선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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