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0년 9월 러시아(모스크바대공국) 군인들은 모스크바 남쪽 쿨리코보 평야에서 몽골(킵차크한국)과 전투를 벌였다. 러시아가 조공을 거부하자 몽골이 정벌에 나선 것이다. 몽골은 평야 전투에서 우위를 차지한 뒤 러시아의 배후로 궁기병을 투입했다. 미리 숲속에 매복해 있던 러시아 군사들은 궁기병을 전멸시키고 평야 전투마저 역전시켰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러시아의 매복·위장 전술을 가리켜 ‘마스키로브카’라고 불렀다.
마스키로브카는 위장, 은폐, 기만, 부인, 내부 교란 등을 통해 상대를 속이는 러시아군의 전형적인 전술을 일컫는다. 마스키로브카가 유명해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다. 당시 소비에트군은 천막 안에서 군함을 제조하고 자동차 공장에서 탱크를 만드는 식으로 독일군을 속였다. 필요 없는 다리를 만들어 그쪽으로 이동할 것처럼 위장하기도 했다.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마스키로브카를 외교에까지 확대했다고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스탈린의 기만술을 이어받았다. 미국 예일대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푸틴의 행동을 마스키로브카로 설명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름반도를 합병할 때 소속을 알 수 없는 군인들이 출현했다. 이들은 러시아의 침공 전에 이미 크름반도의 심페로폴 국제공항을 폐쇄하고 대부분의 군사 기지를 점령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가 자국 군인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바람에 서방국들은 혼란에 빠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러시아 군인들이었고 러시아도 이를 시인했다. 이들이 휘장이 없는 녹색 군복을 입었다고 해서 ‘리틀그린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러시아가 미국과 자신들의 반대파가 저장한 화학무기가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들이 화학무기를 배치하기 위한 마스키로브카일 수 있다”고 말했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조기에 종결되지 않자 아동 병원 등 민간 시설 폭격에 나서는 등 무리수를 두고 있다. 이제 화학무기 사용까지 검토하는 것은 그만큼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저항이 강하기 때문이다. 싸울 의지와 군사력이 있다면 제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함부로 넘보지 못할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