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혼자 아끼고 마음 썼던 것들을 세상에 들고 나올 때 생겨난다. 내가 찾아 닦아낸 귀한 보물이 네 눈에는 싸구려 애물단지라면. 몇 번을 풀어도 또 풀어낼 비밀이 맺힌 시와 이미지가 네게는 난방기에 낀 거미줄이나 양탄자의 마른 포도주 얼룩에 불과하다면. (…) 나는 은합에 가장 붉은 심장을 도려내 주려는데 너는… 차마. 어쩌나. 내 선물을 받아주겠니. 쓰레기라 비웃을 거니. 나는 두렵다. 나는 글을 쓸 수가 없다. 나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윤경희, ‘분더카머’, 2021년 문학과지성사 펴냄)
‘분더카머(wunderkammer)’란 근대 유럽의 지식인과 지배층이 진귀한 보물을 모아놓은 비밀의 공간, 호기심의 방을 일컫는다. 이제 현실에서 자기만의 보물창고와 박물관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다. 윤경희 작가는 더는 집안에 들일 수 없게 된 분더카머를 자기만의 문장으로 쌓아올려 이 책을 건축해냈다. 누구나 내면에 크고 작은 분더카머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든 좋은 것을 슬며시 꺼내어 타인에게 보여주고 나눠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누군가 열광하고 설레는 것을 향해 마치 껌을 뱉듯이, 따귀를 치듯이 반드시 싫은 티를 내고야 마는 사람도 있다. 남이 보물을 내어주면 쓰레기로 받는 사람, 누군가 도려내어준 심장에 침을 뱉는 사람. 그런 사람 앞에 서면 언제나 말문이 턱 막힌다.
나의 한 친구는 흥미로운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인생의 낙이 뭐냐고 묻는다고 했다. 살아갈수록 싫은 것, 화나는 일에 대해 토로하고 뒷말을 하기는 너무도 쉬운데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것,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낙에 대해 순수하게 감탄하고 대화할 기회는 줄어들기 때문이란다. 누가 내면의 보물을 꺼내 보여줬을 때 그거 사실 쓰레기인데 너만 몰랐냐고 산통 깨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비밀에 코웃음을 치는 닳고 닳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당신의 분더카머엔 지금 무엇이 들어 있는가. 이연실 출판사 이야기장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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