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16일 청와대 오찬 회동이 약속 시간 4시간을 앞두고 돌연 무산됐다. 청와대는 “양측의 실무적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회동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 간 회동이 갑자기 취소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신구(新舊) 권력 간 갈등이 정면충돌 양상으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회동 무산 배경을 놓고 양측이 한국은행 총재 임명 등 인사 주도권을 놓고 대립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임기 말 친정부 인사로 채워넣는 ‘알 박기 인사’를 중단하라는 당선인 측의 요청을 청와대는 전날 “5월 9일까지 문재인 정부”라며 인사권 강행 의지로 맞받아쳤다. 양측은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결정 시점을 둘러싸고도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의 대선 과정에서 ‘적폐 수사’ 발언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 것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는 얘기도 들린다.
갈등의 책임론을 놓고 엇갈린 시각이 있지만 먼저 청와대의 몽니와 옹졸한 처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러나는 문 대통령은 국정 업무를 원만하게 인계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다른 핑계를 대고 회동을 취소·연기한 것은 무책임하다. 문 대통령은 5년 동안 정책 실패와 편 가르기 정치로 국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킨 데 대해 성찰하는 자세로 차기 대통령에게 실패의 교훈을 전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스스로 “차기 정부가 안정적으로 출발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는가. 경제·안보 복합 위기 상황에서 신구 정부가 갈등에 휩싸인다면 나라를 더 큰 혼란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현 정부는 오기의 정치에서 벗어나 대선 때 표출된 정권 심판의 민심을 받들어 정권 이양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윤 당선인 측도 ‘점령군’처럼 비치지 않도록 언행을 주의해야 국민 통합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특히 ‘윤핵관’으로 불렸던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김오수 검찰총장의 사퇴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앞장서 요구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양측이 국민 눈높이에 맞춰 낮은 자세로 국정 업무 인수인계에 협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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