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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년심판' 이연 "14살이나 어린 남자아이 연기? 가능할까 싶었죠"

'소년심판'에 출연한 배우 이연 / 사진=에코글로벌그룹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심판’을 본 사람들이라면 놀라는 것들이 있다. 소년범 문제에 대해 무지했던 자신의 모습, 다양한 시각을 제시한 스토리와 연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구현한 배우들의 연기. 그중에서도 작품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 초등생 살인사건의 공범 백성우는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는 인물이다. 극중 14세 남학생 백성우를 연기한 이연이 사실은 여자이고, 올해 28세가 된 배우라는 것을 알고 나면 또 놀라게 된다.

이연이 연기한 백성우는 초등학생을 유인해 처참한 살인을 저지른 친구 한예은(황현정)을 대신해 자백하는 만 13세 촉법소년이다. 그는 1~2화 에피소드를 이끌어가며 작품의 몰입도를 높이고, 마지막화 엔딩에서 다시 재판장에 선 모습으로 충격을 안긴다. 촉법소년에 대한 사회의 시선과 환경, 교화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인물이다.

오디션을 통해 ‘소년심판’에 합류하게 됐다는 이연은 처음부터 백성우 역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많은 여학생 역할 중 하나를 맡게 될 거라고 예상했고, 오디션 대본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소녀 서유리 역이었다. 이연에게서 백성우의 모습을 본 홍종찬 감독의 제안으로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는 연기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걱정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남장 여자가 아니라 남자 역할이어서 가능할까 싶었죠. 보는 분들이 어떻게 보실지 걱정했는데 감독님과 미팅을 하면서 그런 걱정이 거의 없어졌어요. 감독님이 확신이 있으셔서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기분 좋게 ‘할 수 있겠다. 해보겠다. 감사하다’고 하면서 시작했어요.”

이연이 연기한 '소년심판' 백성우 / 사진=넷플릭스 제공


이연은 무엇보다 백성우가 아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실제 나이보다 14살이나 어린아이를 연기하는 것이니 ‘과거의 내가 한살 한살 나이 들 때마다 어떤 것들이 변화하고 어떤 걸 얻었는지, 또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됐는지’에 대한 기억을 파노라마처럼 다시 되짚어 봤다. 외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을 위해서는 5kg 정도 살을 찌웠다. 매일 현장에 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상반신에 붕대를 감는 것이었다.

“감독님이 백성우는 중학교 1학년이고 변성기가 아직 오지 않은 남자아이여서 목소리에 대해 엄청난 부담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어요. 전 그래도 최대한 목소리 톤을 너무 낮추지는 않으면서, 어떻게 하면 너무 아이 같지 않은 톤을 낼 수 있을지 고민했었죠. 첫 재판 때부터 감을 잡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첫 번째 재판 신이 가장 어려웠고요.”

“백성우라는 캐릭터 특성상 누군가를 보고 힌트를 얻기 어려웠거든요. 대부분 제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 친구들의 행동과 몸짓을 따왔어요. 원초적인 생각을 많이 했는데, 요즘 아이들이 가장 많이 노출되는 것이 스마트폰, 노트북이잖아요. 그래서 자세가 좋지 않겠다고 생각해 자세나 걸음걸이를 준비했어요. 딱 기본자세 하나만 준비하고 연기해도 그 후에 뻗어나가는 행동들이 있는 것 같아요.”

성별과 나이에 대한 설정이 끝이 아니었다. 촉법소년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어린 나이에 중죄를 저지른 백성우를 연기하기 위해 연구해야 할 것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럴수록 홍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홍 감독은 ‘법정에 서는 것이 처음인 백성우가 재판이 진행될수록 행동과 표정, 표현들이 다 달랐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생각한 포인트 중 하나가 10대와 20대의 차이점이었요. 지금은 10대 때 제가 절대 겪을 수 없는 경험들을 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그러다 보니 상황에서 유연하게 해결할 수 있는 대처 능력이 생겼거든요. 그런 걸 사회성이라고도 하죠. 그러면서 ‘백성우는 당황스러운 상황이 생겼을 때 어떻게 반응할까’에 대해 스스로 질문했어요. ‘내가 너무 부끄럽고 당황스러운 것을 들켰을 때 나는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니 10대 때는 지금보다 좀 더 거칠고, 모든 표정과 말투와 떨림들이 전혀 숨겨지지 않았던 거 같아요.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어른들은 다 알고 있었죠. 이런 것에 초점을 뒀어요.”

/ 사진=에코글로벌그룹 제공


작품의 엔딩에 등장한 백성우는 대사도 없이 눈빛만으로 시선을 압도했다. 얼굴을 가득 채운 타투와 피어싱도 한몫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독기와 변화가 느껴졌다. 본인이 엔딩을 장식하게 된다는 것을 1~2화 촬영 이후 알게 됐다는 이연은 그동안 생략된 백성우의 삶과 변화 등을 모두 미루어 짐작해야 했다. 가장 먼저 시간의 경과를 표현하기 위해 체중 감량을 자처했다.

“1~2화 때 백성우의 분노와 10화의 백성우의 분노에 차이점을 두고 싶었어요. 이 친구가 교화되지 못하고 법정에 다시 섰을 때는 이유가 있을 거고, 그 이유를 표현할 있는 방법은 변화였거든요. 순간과 기억들로 변화한다고 생각하는데 백성우가 좀 더 노련해졌다고 생각이 들어 그런 방법으로 분노를 표현했어요.”



“환경이 변하지 않는 이상 교화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1~2화때 백성우는 겁이 많은 친구였는데 본인이 예상치도 못한 결과를 만들었고, 그 결과를 만들었기 때문에 얻게 되는 책임이 있었잖아요. 그 책임을 긍정적으로 감당할 만큼의 친구인가 싶었어요. 10화 엔딩을 봤을 때는 아니었구나 싶어서 마음이 정말 많이 아팠고요. 결국 환경이 이 친구를 바꿔주지 못했고, 어쩌면 더 방치된 환경에서 이 시간들을 지낼 수도 있었겠다고 짐작했어요. 그래서 '난 어떤 어른인가?'라고 더 반성하기도 했고요.”

/ 사진=에코글로벌그룹 제공


세심하면서도 열정적인 이연의 연기는 백성우라는 인물을 만들었다. ‘백성우가 여자인지 몰랐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고, 함께 연기한 선배 배우 김혜수, 김무열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홍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백성우가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찾아왔다”고 하기도.

“‘여배우인지 몰랐다’는 반응은 배우로서 확실히 기분이 좋았어요. 사실 성별보다는 나이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놀라실지 몰랐어요. 저에 대해 스스로 놀라고 거울을 보게 됐습니다.”(웃음)

“연기력 호평은 가장 기분 좋은 칭찬이에요. 배우는 연기 잘한다는 칭찬이 가장 좋거든요. 연기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선배님들이나 감독님 모두 제가 연기를 잘 할 수 있게 도와준 현장이었어요. 김혜수 선배님이 칭찬해 주신 걸 기사로 봤는데, 현장에서도 행동으로 표현해 주셨거든요. 제가 백성우 역을 하는 것을 믿어주셨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더 잘해보려고 노력했고요. 칭찬해 주신 것에 대해 영광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어요.”

역할에 감정이입을 하다 보면 실제와 구분 짓기 힘들어지기도 하고, 배우로서는 강렬한 역할의 이미지가 고착화될까 부담감을 갖기도 한다. 반면 “어느 작품이나 부정의 에너지를 써야 할 때는 연기하고 나면 멍해진다”는 이연은 “나라는 사람과 역할의 선을 분명해 그어 놓고 연기해야 힘들지 않다. 정확하게 선을 지킨다”며 오롯이 작품과 역할에만 초점을 두는 모습을 보였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부담감은 없었어요. 지금도 없고요. 작품 안에서 호감인 캐릭터도 있고 비호감인 캐릭터가 있잖아요. 캐릭터들이 다양한데 무엇이 됐든 나에게 주어지고 할 수 있다고 판단한 캐릭터라면, 배우로서 연기를 잘 해내는 게 작품에 기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의 이미지 때문에 좋은 작품을 만나서도 그 정도의 고민을 한다면, 제 것이 아니지 않을까 싶어요. 향후 미래가 어떻게 될지 보다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작품의 방향성이나 메시지에 중점을 두고 선택해요. 그 역할이 무엇이 됐든 최선을 다해 잘 보여드려야 다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막 5년 차가 된 신인 배우 이연은 10대 시절부터 배우를 준비하는 이들에 비하면 비교적 늦게 연기를 시작하게 됐다. 연기를 시작한 건 22~23살이던 무렵, 무대공포증이 심해 대학교를 휴학하고 연기 치료를 받으면서부터다. 1년 정도 연기 치료를 받으면서 깜깜해보이던 앞이 보이기 시작했고,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번 도전해 볼까?’라는 생각으로 단편 영화부터 차근차근 밟기 시작해 첫 상업 작품 ‘소년심판’까지 오게 됐다.

“영화 취향도 그렇고 여러 장르를 좋아해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주변에 있는 언니 같은 역할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제가 지금 일상 일대의 사건들을 겪고 있어서 일상적인 연기를 해보고 싶거든요. 극 안에서 저도 가끔은 예뻐 보이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건 제 생각이잖아요. 연기할 때 방해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의 생각이 캐릭터를 잡아먹지 않아야 하는 거죠. 악역이나 비호감 캐릭터를 하면 미움을 받고 싶지 않은 생각도 들지만 그건 이연의 생각일 뿐이니까 끊어내면서 연기하려고 해요. 항상 싸우고 있어요.”(웃음)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또 그걸 넘어서 신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하게 되기까지도 그렇고, 이후에 작품을 보는 분들에게도요. 신뢰가 있어야 어디서든 제 작품을 봤을 때 이질감 없이 작품의 메시지에 집중해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신뢰 가는 배우, 응원을 많이 받는 배우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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