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위기로 정의할 수 있어야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현재를 위기로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는 매일매일을 같은 일의 연속으로 생각한다. 어제와 그제가 같았고 오늘도 마찬가지, 내일도 모레도 이와 같은 나날이 계속되리라 여긴다. 위기는 천천히 무르익어서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눈앞에 터진다. 70여 년 전 어느 여름날 새벽 우리가 그렇게 당했다. 그날 아침 화창한 초여름 일요일은 어제나 그제와 똑같이 시작했다.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세상은 그대로 계속되리라 믿었다. 그것이 3년간 계속되는 대재난이며 우리와 우리의 세상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바꾸는 사건의 시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수많은 재난의 징후가 있었지만 그런 것을 별로 눈여겨보거나 마음에 담아 근심하지 않았다. 지금 유럽인들이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이들도 이미 30여 년 전의 대변혁 이후 실현된 평화로운 세월이 무한정 계속되리라 여기고 살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부랴부랴 떠들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사이 현장에서는 살육과 파괴가 이어지고 있다. 지구가 끝나는 날까지 역사의 종언은 없다. 사람도 현실도 끊이지 않고 바뀐다. 지도자는 달라야 한다. 심상한 일상들의 연속 속에서도 사람들이 딛고 사는 땅 밑은 움직이고 있을 수 있다. 지각변동(tectonic change)의 징후를 파악하고 그 정체와 의미를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지도자의 또 다른 자질은 협력을 조직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모든 성취의 본질은 다른 사람들과 협력을 이룩하는 데 있다. 협력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닥쳐오는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
한반도 1950년. 우크라이나 2022
세상은 끊임이 없는 변화의 연속이다. 사람도 세상도 변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특정한 시기만을 전환기(Zeitenwende)라고 한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정치의 큰 전환기로 흔히 한국전쟁을 든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자 영미 등 서방의 나라들은 더 이상 평화의 희망에 집착하지 못하고 서둘러 재무장하고 군비를 강화한다. 세계는 본격적으로 냉전 체제로 들어간다. 물론 위기의 징후는 그전부터 있어 왔다. 중국 대륙이 공산당 주도로 통일된 후에 특히 그러했다. 그때 우리는 닥쳐올 위기를 깨닫고 여기에 대처했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자 세계의 중요한 나라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전쟁에 참여한다. 숨겨진 세계 전쟁이다. 단지 전장은 한반도에 국한되고 가장 큰 상처는 한민족의 몫이다. 우크라이나를 보면 70여 년 전의 우리가 떠오른다. 위기가 눈앞에서 터지기 전에 유럽도 미국도, 그리고 본인들도 수십 년 계속된 일상이 그대로 계속되리라고 여겼다. 거의 온 세계가 동정과 지원을 할지라도 실제 집을 잃고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인들이다.
세상은 끊임이 없는 변화의 연속이다. 사람도 세상도 변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특정한 시기만을 전환기(Zeitenwende)라고 한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정치의 큰 전환기로 흔히 한국전쟁을 든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자 영미 등 서방의 나라들은 더 이상 평화의 희망에 집착하지 못하고 서둘러 재무장하고 군비를 강화한다. 세계는 본격적으로 냉전 체제로 들어간다. 물론 위기의 징후는 그전부터 있어 왔다. 중국 대륙이 공산당 주도로 통일된 후에 특히 그러했다. 그때 우리는 닥쳐올 위기를 깨닫고 여기에 대처했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자 세계의 중요한 나라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전쟁에 참여한다. 숨겨진 세계 전쟁이다. 단지 전장은 한반도에 국한되고 가장 큰 상처는 한민족의 몫이다. 우크라이나를 보면 70여 년 전의 우리가 떠오른다. 위기가 눈앞에서 터지기 전에 유럽도 미국도, 그리고 본인들도 수십 년 계속된 일상이 그대로 계속되리라고 여겼다. 거의 온 세계가 동정과 지원을 할지라도 실제 집을 잃고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인들이다.
숨겨진 동맹의 힘
전쟁이 끝난 후 한국의 현대사는 믿기 어려운 성공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성공의 기초에 한미 동맹이 있었다. 한미 동맹은 지난 세기의 후반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지켜 주었고 이어지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초석이 돼 왔다. 주한 미군은 북한의 군사주의 모험에 방패(deterrence)인 동시에 남한의 대응에 억제(restraints) 역할을 해 한반도의 안정을 지켜 왔다. 북한도 이 안정의 숨은 수혜자였다. 한미 동맹이 없이는 우리는 또 한번의 전쟁을 치를 수도 있었다. 전면전쟁이 아닐지라도 끊임없는 도발과 응전의 연속 속에 경제개발이나 민주화도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었다. 군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위상과 역할을 담당하는 나라는 경제 발전이나 민주화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한미 동맹에는 숨겨진 동맹국이 있었다. 일본이다. 일본의 참여와 도움 없이는 한미 동맹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 체제의 불가분한 장치가 유엔군 사령부다. 유엔군 사령부 없이는 일본에 집중돼 있는 미국의 군사력도 실효를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소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만약 일본이 지척에 있지 않고 호주와 같이 멀리 있었다면 우리가 한국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오랜 평화와 번영을 누려 온 우리는 일본도 유엔군 사령부도 경시 혹은 무시해도 되는 것으로 여긴다.
포기할 수 없는 한일 간의 우호와 협력 그리고 동북아
현재 한국과 일본 간의 현황은 ‘복합 골절’ 상태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다. 지난 5년 우리는 중요한 한일 관계를 가능한 한 풀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양국 사이의 관계는 꼬일대로 꼬여서 외교 관계의 영역을 벗어났다. 통상 문제부터 사법적 처리, 한국 내 일본 기업과 일본 재산의 현금화 문제, 양국 국민의 정서와 국내 정치의 요인까지 겹쳐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다. 가장 유감스러운 일은 ‘반일’과 ‘혐한’의 와중에서 양국 국민들의 정서와 여론이 악화한 것이다. 그 와중에 양국 국민이 공유했던 일말의 정서와 특히 일본의 양심적 시민사회의 영역도 축소돼 버린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 새 정부의 시작과 함께 양측이 심기일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참의원 선거가 있는 오는 7월 전에 해결의 실마리도 찾기 힘들게 돼 있다. 다른 한편 세계와 특히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이미 지각의 변동이 표면으로 분출하는 상황이다. 70여 년의 안전보장이 현재와 앞날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은 안일한 낙관이다. 이미 일부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일 간의 우호와 협력은 포기할 수 없는 숙제라는 점이다.
현재 한국과 일본 간의 현황은 ‘복합 골절’ 상태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다. 지난 5년 우리는 중요한 한일 관계를 가능한 한 풀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양국 사이의 관계는 꼬일대로 꼬여서 외교 관계의 영역을 벗어났다. 통상 문제부터 사법적 처리, 한국 내 일본 기업과 일본 재산의 현금화 문제, 양국 국민의 정서와 국내 정치의 요인까지 겹쳐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다. 가장 유감스러운 일은 ‘반일’과 ‘혐한’의 와중에서 양국 국민들의 정서와 여론이 악화한 것이다. 그 와중에 양국 국민이 공유했던 일말의 정서와 특히 일본의 양심적 시민사회의 영역도 축소돼 버린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 새 정부의 시작과 함께 양측이 심기일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참의원 선거가 있는 오는 7월 전에 해결의 실마리도 찾기 힘들게 돼 있다. 다른 한편 세계와 특히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이미 지각의 변동이 표면으로 분출하는 상황이다. 70여 년의 안전보장이 현재와 앞날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은 안일한 낙관이다. 이미 일부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일 간의 우호와 협력은 포기할 수 없는 숙제라는 점이다.
위기와 기회 그리고 정치적인 능력
한 가지 희망적인 전망이 있다. 모든 것이 70년 전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제 위기를 새롭게 정의하고 이에 대처할 인적·물질적인 자원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 이른바 선진국만을 바라보고 선진국에 의존하던 과거의 한국이 아니다.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교육 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을 달성했다. 단지 협력을 조직하고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처할 정치적인 능력만은 아직 미지수다. 거의 모든 사람이 통합·협치 혹은 초당 외교를 말하지만 사회에 만연한 분열과 갈등을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호조건으로 활용할 정치적인 능력은 미지수다. 여기에 하나의 시험문제가 있다.
안중근 그리고 동양 평화론
한미 동맹은 오랫동안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였고 이것은 현재와 예측 가능한 미래에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반도의 통일 이후에도 주한 미군은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오래된 장치와 경험을 미래를 위해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는 우리가 함께 생각할 수 있는 문제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일본의 요인급 정치인이 사견을 전제로 한일 양국이 어떤 경우에 유엔 평화 유지군을 공동으로 조직해서 파견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언급한 일이 있다. 나도 사견을 전제로 그런 일은 현 상황에서 생각하기 어렵다는 답을 했다. 한미 혹은 한미(일) 간의 협력이 이 지역에서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는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런 안전보장을 위한 마련이 이 지역에서 대결과 적대 관계가 아닌 교류와 협력을 담보하는 조건이 될 수는 없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희망적인 환상에 불과하다는 평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 세기 전 선진 열강들이 부국강병의 미망으로 자국민·타국민을 막론하고 파괴와 살육의 현장으로 몰아넣던 때 안중근이 남긴 유고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문제는 국가 혹은 권력이 아니다. 사람이 문제다.
라종일 석좌교수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영국 대사와 주일 대사 등을 지내면서 한국의 외교 현장을 누빈 뒤 한국의 정치와 외교의 나아갈 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끝나지 않은 전쟁’과 ‘세계의 발견:라종일이 보고 겪은 한국 현대사’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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