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드리드에서 하는 운전을 그냥 며칠만 하면 되는 거예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까지 왕복 6000㎞를 닷새간 운전하며 우크라이나 난민 가족을 실어나른 택시 기사 하비에르 에르난데스(47)씨는 겸손했다.
에르난데스씨는 러시아가 침공한 우크라이나를 탈출해 바르샤바 난민수용소에 머물고 있던 부부와 12살 난 아들을 태우고 지난 17일(현지시간)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그는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폭격을 피해 도망친 아이들과 여성들의 사진을 보고 나니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 없어 행동에 나섰다고 말했다.
택시를 타고 떠난 첫날 난민들은 잠깐 쉴 때도 택시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으며 어색해했지만 이제는 스스럼없이 기사들을 껴안고, 농담을 할 만큼 사이가 가까워졌다.
택시 호송대는 기사 몇 명이 마드리드 공항에서 손님을 기다리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나온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폴란드에 가서 스페인으로 오기를 원하는 난민들을 데려오자는 제안을 기획한 호세 미겔 푸네즈씨는 예상외로 참가하겠다는 기사들이 많아서 놀라웠다고 전했다.
총 29대의 택시를 동원해 우크라이나인 135명과 강아지 네 마리, 고양이 한 마리를 스페인으로 데려왔다. 택시 한 대에는 기사 2명이 탑승해 교대로 운전대를 잡았다.
여기에 들어간 비용은 5만유로(약 6700만원)로 주최 측은 추산하고 있다. 이 돈은 동료 기사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것이다.
우크라이나 여성 3명을 태우고 택시 운전대를 잡은 헤수스 안드라데스(37)씨는 "몇몇 택시 기사들의 자녀는 돼지저금통에 있는 돈을 주기도 했다"며 "우리 민족은 감탄스럽다"고 말했다.
태어난 지 2개월 된 아이와 엄마를 데려온 누리아 마르티네즈(34)씨는 "집에서 소파에 앉아서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다시 한번 폴란드를 향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택시를 타고 동생이 있는 스페인에 발을 들인 우크라이나인 크리스티나 트라크(22)씨는 기사들을 "우리의 영웅"이라고 부르며 감사함을 표시했다.
조부모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 두고 온 트라크씨는 일자리를 찾아 조국과 가족을 도울 수 있도록 돈을 버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15살짜리 아들 손을 잡고 키이우를 떠난 올하 쇼카리바(46)씨는 "우리 집이 남아있는지,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쇼카리바씨의 남편과 큰아들은 각각 키이우와 우크라이나 서부 빈니차에 남아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300만명 이상이 우크라이나를 떠났으며, 다수가 국경을 접한 폴란드로 향했다.
마드리드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스페인에 가족이 있는 난민을 중심으로 택시 호송대에 탈 사람들을 선발했으며, 이들은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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