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내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는 가수와 배우들이 방송에서 퇴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영국BBC는 21일(현지시간) 지난달 말 러시아 미디어그룹(RMG)이 성명을 통해 일부 예술인들의 TV와 라디오 출연을 금지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RMG는 이와 관련해 "일부 예술인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지나치게 거친 언사를 쏟아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RMG는 "러시아의 예술인들을 존중한다"면서도 "일부 가수들의 오만한 태도에 대해 계약을 파기하는 것 외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RMG는 방송 출연을 금지당한 예술인들은 일부 우크라이나 가수들과 3명의 러시아 배우들이고, 이들의 이름이 적힌 블랙리스트 문건이 현재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리스트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우크라이나 가수 이반 도른은 지난달 24일 "이 참사를 끝내라, 이 학살전에 가담하지 말라"고 촉구하는 영상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는 이후 RMG에 의해 방송 출연이 금지됐다. 도른은 BBC에 "블랙리스트 전에도 그랬기 때문에 이 명단에 오른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러시아 래퍼 옥시미론도 러시아 순회공연을 취소하고 대신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구제 기금 마련을 위해 해외에서 자선 공연을 열었다. 그는 터키 이스탄불 공연에서 3만 달러(약 3630만 원)를 모았으며 오는 24일 영국 런던 공연도 예정돼 있다. 그는 러시아 공연 취소를 공지하면서 "우크라이나에 포탄이 떨어지고, 키이우 주민들은 지하실이나 전철역에 숨고 일부는 죽어가는 상황에서 청중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옛 소련 시절부터 활동한 전설적인 록 그룹 아크바리움의 리드 싱어인 보리스 그레벤쉬코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가리켜 "미친 짓"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내 인생의 절반은 '금지' 상태였다"며 "70년대에도 그랬고 80년대에도 그랬다"고 말했다.
한편 BBC는 러사아 내에서 돌고 있는 블랙리스트에 대해 해당 인사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누가 만들었는지 불분명하고 진위조차 확인할 없을 뿐 더러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도 상관 없다는 입장이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오래된 클럽인 '16톤'의 음악감독 파벨 카마킨은 “블랙리스트 문건이 조작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블랙리스트 문건을 보지 못했다"면서 "그런 일이 있으면 관계 기관에서 나를 가장 먼저 찾아오지만 지금까지 나를 만나러 온 사람이 없다"고 설명했다.
블랙리스트와 상관 없이 아예 소속을 해외로 옮긴 사례도 있다. 러시아 최고 발레리나 올가 스미르노바(30)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이유로 볼쇼이 발레단에서 나와 네덜란드 발레단으로 옮겼다. 그는 "조국을 수치스러워하는 날이 오리라고 상상조차 못했다"며 "문화·체육 분야에서 재능 넘치는 러시아인을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침공 전후를 가르는 어떤 선이 그어진 기분"이라고 심경을 전했다.
2011년 입단 이후 볼쇼이 발레단의 간판으로 활약한 스미르노바는 2013년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받은 바 있다. 그는 볼쇼이 발레단과 함께 국제 순회 공연을 했으며 아메리칸 발레극장과 빈 국립발레단의 객원 공연자로도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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