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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피' 천명관 감독 "밑바닥 인생의 치열한 생존기, 제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 담아"

1990년대 부산의 변두리 배경

어설픈 양아치들 '날것'의 감성

생생한 캐릭터로 효과적 연출

천명관 감독. 사진 제공=키다리스튜디오




“제가 쓴 작품을 보면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없어요. 제가 대졸자가 아니고 서른 될 때까지 대학 나온 사람을 본 적도 없었다 보니 화이트칼라 엘리트들이 뭘 하는지, 어떤 취향을 갖고 있는지, 어떤 고민을 하고 살아가는지 상상할 수가 없어요. 저는 충무로에서 중국집 배달을 하다가 다찌마리(액션장면) 대역 배우가 되는 식의 얘기를 잘 알고 쓸 뿐이죠. 특별한 소명 의식은 없지만, 제가 아는 사회의 하위 주체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바람입니다. ”

23일 개봉하는 영화 ‘뜨거운 피’는 90년대 부산 변두리 가상의 작은 포구인 구암을 배경으로 한 느와르물이다. 주인공 희수(정우)와 그의 친구 철진(지승현), 희수를 따르는 양아치 아미(이홍내), 구암의 주인인 손영감(김갑수) 등이 다툼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양복 입은 폭력배들의 깔끔한 범죄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부산은 90년대에도 현대화된 대도시였지만, 배경 설명을 못 듣고 봤다면 어느 낙후된 중소도시로 착각할 만하다. 희수부터 인간적 성격이지만 마흔이 되도록 이렇다 할 기반이 없는 밑바닥 건달이고, 인물들의 액션신은 깔끔하지 않은 막싸움에 가깝다. 상가집에서 비통하게 술을 마시는 주인공과 그 옆에서 사소한 시비로 벌어지는 막싸움이 교차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영화 ‘뜨거운 피’ 스틸컷. 사진 제공=스튜디오 디에이치엘


하지만 이 작품이 소설 ‘고래’, ‘고령화 가족’, ‘나의 삼촌 브루스 리’ 등을 쓴 천명관의 영화감독 데뷔작임을 고려하면 납득이 간다. 그는 작품마다 우리 주변에 있지만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왔으며, ‘뜨거운 피’ 역시 이 연장선상에 있다. 천 감독은 지난 17일 화상으로 만난 자리에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영화지만 찐한 취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뜨거운 피’는 김언수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천 감독은 “이렇게 데뷔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돌아봤다. 원래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소설 한 편을 썼는데, ‘뜨거운 피’의 원작자와 제작자로부터 연출 제안을 받고 고민 끝에 수락하게 된 것. 원작을 읽고 영화화 욕심이 났다는 천 감독의 마음을 잡은 건 극도의 변두리, 밑바닥인 90년대 부산 구암의 모습이었다. 그는 “어설픈 양아치들이 밑바닥에서 진짜 조직이 되는 이야기가 마피아 스토리의 프리퀄 같아 매혹적이었다”며 “진짜 조직이 된 뒤의 모습은 그다지 매력이 없다”고 말한다.

영화 ‘뜨거운 피’ 스틸컷. 사진 제공=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영화는 2시간의 상영시간 동안 희수가 구암의 이권을 둘러싼 싸움에 휘말리면서 타락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부산 출신인 정우는 그 당시의 날것 같은 밑바닥 감성을 효과적으로 재현하면서, 수렁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칠수록 더 추락하는 모습을 캐릭터에 딱 맞춘 듯 생생하게 연기해낸다. 천 감독은 “희수 캐릭터는 정우가 다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지역과 시절의 감수성이 예리하게 살아 있었다”며 “그가 만든 캐릭터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했다”고 극찬했다. 정우 외에도 김갑수를 제외한 모든 배우를 경상도 출신으로 캐스팅하며 캐릭터에 활기를 넣었다.

또한 주변인물의 서사를 풍부하게 만들거나 플롯을 한 번 비틀고, 복잡성이나 우연성 등을 부각하는 최근의 경향과 달리, 철저히 주인공에 집중하는 직선적 스타일도 눈에 띈다. 전통적 형식과 기법에 충실했던 원작을 따른 결정이었다. 천 감독은 “또한 3시간 반에 달했던 현장 편집본을 축약하는 과정서 주변 인물들의 서사를 줄이는 대신 훨씬 직선적이면서 스피드가 붙게 됐고, 저도 이를 택했다”고 돌아봤다.

영화 ‘뜨거운 피’ 스틸컷. 사진 제공=스튜디오 디에이치엘


‘뜨거운 피’는 천 감독이 예순이 다 돼서 영화감독의 꿈을 이룬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는 골프숍 점원, 보험 외판원 등을 하다 31살의 나이에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며 영화감독 데뷔를 노렸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고 마흔의 나이에 소설가로 데뷔해 성공을 거뒀다. 이런 독특한 이력 덕분인지 천 감독은 “흔히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지만 저는 인생이 길고 예술은 짧은 것 같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인 80년대 초반만 해도 디스코가 온 세계를 뒤집었고, 누구나 디스코를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얼마 안 돼서 유행은 끝나고, 지금은 디스코가 일종의 클래식으로 재평가를 받죠. 90년대 헤비메탈이나 얼터너티브 록, 브릿팝 같은 장르도 그렇게 지나갔고 저는 힙합의 시대를 살죠. 하지만 그런 예술의 유행 속에서도 저희는 여전히 살아서 음악을 듣고 있어요. 그러니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지 않을까요”

영화 ‘뜨거운 피’ 스틸컷. 사진 제공=스튜디오 디에이치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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