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은행(IB)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러시아발 경제 충격에 취약한 나라에 속한다. 한국의 대러시아 교역액은 274억 달러로 중국·일본·인도보다 많다. 특히 주요 수입 품목이 원유 등 에너지 부문이라는 문제가 있다. 한국 수입 원유의 6.4%, 천연가스 6.7%, 유연탄 16.3%가 러시아산이다.
에너지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세계 어느 한 곳에서라도 수급 차질이 발생하는 경우 경제에 타격을 입는다. 사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부터 기후변화 협약으로 인한 유전개발 축소,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 증대,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 공급 차질로 원유 가격이 올랐으며 수입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한국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연속해 무역수지 적자를 겪었다.
지난 2월 하순 러·우크라 전쟁 발발 후 원유 가격이 배럴당 128달러까지 올랐다가 잠시 꺾였으나 유럽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를 검토한다는 소식에 다시 상승 추세다. 한국은 3월에도 무역수지 적자가 예상되며 장기화할 조짐도 보인다.
러시아 금융 제재로 인한 불안도 걱정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카르멘 라인하트가 러시아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을 얘기했다. 러시아가 16일 예정됐던 1억 2000만 달러의 이자를 갚으며 한고비 넘겼지만 갚아야 할 돈이 계속 줄을 이어 시간문제일 뿐이다. 피치·무디스·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 3대 신용평가사는 러시아 채권을 디폴트 직전 단계로 강등시켰다.
현재로서는 1998년처럼 러시아 국가 부도 사태로 이어질 우려는 작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손실을 본 유럽 은행들이 신흥국 투자를 줄이면 국제 금융시장이 출렁거릴 수밖에 없다. 터키와 동유럽이나 브라질 등 남미 신흥국 시장이 타격을 받고 그 여파가 아직도 선진 주식시장에 편입하지 못한 한국까지 미친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외국 투자가는 한국 증시에서 발을 빼고 있다. 2020년 초 40%에 육박했던 코스피 시장의 외국인 비중이 최근 31%대까지 내려갔다.
정권 이양기에 있는 한국 현 정부와 차기 정부 모두 이 같은 긴박한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후임 지명을 놓고도 양측 주장이 엇갈려 통화정책의 혼선이 우려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 위기 대응책이 아닌 청와대 이전 문제 논의를 위해 대통령의 회의에 참석하는 실정이다.
당선인 측과 현 정부 측이 경제만큼은 적극적인 공조 체제를 구축해야 할 중요한 시기다. 세계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일고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은 2%대로 떨어졌다. 국회 청문회 등 한은 총재 임명 절차를 속히 진행해 공백 기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미국과 통화 스와프를 추진해 국제 금융시장 충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를 대체할 원유·천연가스 공급처를 확보하고 나프타 수입의 러시아 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한다.
러시아에 차량 부품 등을 수출하는 많은 중소기업이 대금 지급 지연이나 루블화 수령 요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대금 회수가 제때 안 되면 버텨낼 체력이 없다. 정부와 수출입은행 등이 나서서 수출 기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유류세 인하 연장 및 전기 요금 동결 정책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물가 부담을 잠시 덜어주지만 에너지 수요를 부추기는 부작용이 있다. 고통스럽더라도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바른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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