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인 매들린 올브라이트(사진)가 지병인 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미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들은 23일(현지 시간) 올브라이트 전 장관의 가족을 인용해 별세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체코 이민자 출신인 그는 1937년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1세 때 나치와 공산 정권을 피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넘어왔다. 웰즐리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뒤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지미 카터 정부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되며 백악관에 입성한다. 그는 1993년 출범한 빌 클린턴 정부 1기 당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어 클린턴 2기(1997~2000년) 당시 국무장관 자리에 오르며 정치 경력의 정점을 장식했다. 이민자에 여성인 그가 미국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며 남성 중심인 미국 외교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를 이어 콘돌리자 라이스, 힐러리 클린턴 등 여성 국무장관의 시대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미 상원도 인준안 투표에서 99 대 0 ‘만장일치’로 동의하며 그에게 힘을 실어 줬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확장을 지지했다. 어린 시절 나치로부터 탄압을 받은 경험이 ‘자유 진영 확대’라는 그의 외교 기조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그는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 사태 등으로 발생한 이른바 ‘인종 청소’ 사태를 막고자 서방 동맹의 개입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외교외원회 소속 상원 의원이던 조 바이든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미 국무장관으로는 최초로 지난 2000년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했다. 북한과 미국 간 ‘적대 관계 종식’을 천명한 북미 공동 코뮈니케가 올브라이트 전 장관이 북한 방문으로 얻은 성과다. 은퇴 후에는 모교에 자신의 이름을 딴 ‘올브라이트 국제문제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여성 지도자 육성에 힘을 쏟기도 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의 별세 소식에 각계에서 애도가 이어졌다. 그를 국무장관으로 발탁한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부인 힐러리 전 국무장관과 함께 성명을 내고 “고인은 자유·민주주의·인권을 위한 열정적인 힘이었다”며 “평화와 안보·번영을 진전시키는 데 가장 많은 일을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가 별세하기 불과 2주 전 클린턴 전 대통령과 대화하며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싸움을 지지했다고 전했다. 실제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지난달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역사적인 과오”라고 비판한 바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추모 성명을 내고 “비통하다”면서 자신이 직접 그린 올브라이트 전 장관의 초상화를 트위터에 올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매들린을 떠올리면 언제나 ‘미국은 없어서는 안 될 국가’라던 그의 신념이 기억날 것”이라며 “그와 함께 일한 시기는 나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였다”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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