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반 사이 3승에 세계 랭킹 1위 등극까지…. ‘슈퍼 영건’의 등장에 골프계가 흥분에 빠졌다.
주인공은 1996년생, 이제 스물 여섯인 스코티 셰플러(미국)다. 그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첫 우승 뒤 세계 1위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42일. 타이거 우즈(미국)도 이만큼 빠르지는 않아 첫 승 후 252일이 필요했다. 셰플러는 첫 우승 기준 역대 최단 기간에 월드 넘버원 자리를 꿰찼다.
최근 5개 출전 대회에서 세 번을 우승했는데 이 기간 상금으로만 617만 2200달러(약 75억 6000만 원)를 챙겼다. 단 7주 동안 번 돈이다. 셰플러는 시즌 상금 1위(약 739만 달러), 성적 누계인 페덱스컵 포인트 1위, 세계 랭킹 1위다. 2018년 말 세계 1589위였는데 3년여 만에 1588계단을 뛰어올랐다.
셰플러는 28일(한국 시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CC(파71)에서 끝난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델 테크놀로지스 매치플레이(총상금 1200만 달러) 결승에서 케빈 키스너(미국)를 4홀 차로 꺾어 상금 210만 달러를 획득했다. 지난해 이 대회 준우승의 아쉬움을 깨끗이 씻은 셰플러는 2월 피닉스 오픈, 이달 초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제패에 이어 2021~2022시즌 PGA 투어에서 가장 먼저 3승째를 올렸다. 세계 5위였던 셰플러는 욘 람(스페인)을 2위로 밀어내고 새로운 세계 1위가 됐다.
이날 4강에서 전 세계 1위 더스틴 존슨(미국)을 1홀 남기고 3홀 차로 따돌린 셰플러는 결승에서도 초반부터 기선을 제압한 끝에 15번 홀에서 백기를 받아냈다. 그린 주변 어프로치 샷을 어이없이 벙커에 빠뜨렸지만 벙커 샷 버디로 끝낸 12번 홀(파5)이 하이라이트였다. 셰플러는 이 대회 역대 전적 21승 1무 4패의 ‘매치 도사’ 키스너를 한 홀도 내주지 않고 돌려세웠다. 코리 코너스(캐나다)가 3위, 존슨은 4위로 마쳤다.
미국 골프 채널은 셰플러의 성공을 ‘다이내믹 듀오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견실한 캐디 테드 스콧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는 얘기다. 영국 매체 골프먼슬리에 따르면 셰플러는 성경 연구 모임에서 스콧과 만나 친분을 쌓았다. “인간으로서 스콧의 매력에 끌렸고 그러면 코스 안에서도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셰플러의 설명이다. “꼭 크리스천과 일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은 스콧은 1주일간 가족과 함께 기도하며 고민한 뒤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스콧은 지난해 가을까지 15년이나 장타자 버바 왓슨(미국)의 골프 백을 멨던 캐디다. 왓슨은 스콧과의 ‘발전적 해체’를 알리며 “내가 인간으로서 성숙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라고 경의를 표했다. 둘은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셰플러는 스콧과 호흡을 맞춘 다섯 번째 대회인 피닉스 오픈에서 첫 우승을 했다. 피닉스 오픈 전까지 70개 대회에서 우승이 없었는데 피닉스 오픈부터 5개 대회에서 3승을 쓸어 담았다. 다음 달 7일 개막하는 마스터스 우승 후보로도 당연히 급부상했다.
이날 결승 중 물을 넘기는 파3 11번 홀에서 셰플러는 방향을 알 수 없이 도는 바람에 당황한 듯 보였다. 그는 티샷 전 한 발 물러서 스콧에게 조언을 구했다. 바람의 방향에 대한 확신을 얻고 어떤 클럽이 좋을지 추천도 받은 셰플러는 티샷을 가볍게 그린에 올려 위기를 넘겼다. 보통의 캐디들도 다 하는 일이지만 믿음의 크기에 따라 효과는 달라지는 법이다. 셰플러는 코스 안팎에서 스콧을 100% 신뢰한다. 같은 조의 경쟁 선수가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위기를 넘기고 어떻게 상승세를 타는지 지켜보고 공부한 뒤 파트너에게 제안하는 게 스콧이 일하는 방식이다. 셰플러는 “스콧의 직업 정신과 인간성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스콧은 자신을 향한 스포트라이트에 “셰플러는 나를 만나기 전부터 월드 클래스였다. 주니어 세계 랭킹 1위를 지냈고 엄청난 대학 선수였으며 콘페리(PGA 2부) 투어 올해의 선수 출신”이라며 “내가 뭔가 특별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지 말아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2020년 PGA 투어 신인왕인 셰플러는 그해 노던 트러스트 2라운드에서 ‘꿈의 59타’를 작성했고 지난해 미국·유럽 대항전인 라이더컵에서 세계 1위 람을 격파해 주목을 받았다. 고향에서 특급 대회를 우승하고 세계 1위까지 오른 셰플러는 “늘 이 대회 참가를 꿈꿔왔다. 수많은 팬들 앞에서 경기하고 응원을 받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세계 1위는 더 실감나지 않는다. 나는 골프를 사랑하고 경쟁 자체를 즐긴다. 여기 있다는 사실이 행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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