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생존(適者生存)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생물이나 집단이 살아남는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글에서 말하려는 적자생존은 적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진화론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100세 인생 시대에 ‘잘 살아남는 법’이라는 측면에서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평균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년기에 접어들기 전에 장년기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다 해보려고 할 때 적어도 시간이 제약이 되진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시간은 많아졌는데,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는 데 있다. 그래서 평소에 하고 싶은 일과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책 <탁월한 인생을 만드는 법>의 저자 마이클 하얏트는 “서면으로 기록된 목표가 중요한 이유로 첫째 당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게 하고, 둘째 저항을 극복하도록 도우며, 셋째 행동에 옮기도록 자극한다, 넷째 다른 기회를 걸러내며, 마지막으로 진행 상황을 확인하게 한다”면서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필자는 십여 년 전부터 버킷리스트를 적어 놓고 달성한 것을 하나씩 지워가고 있다. 처음에는 수첩을 이용했다가 지금은 ‘에버노트’ 앱을 사용하고 있다. 내 버킷리스트는 한 번뿐인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해 매일매일 머리와 가슴 사이 30cm를 오가는 여행의 산물이다. 그리고 수시로 수정하고 보완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기록이다.
그중에는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도 있고 현재 직장에서 퇴직한 이후에나 가능한 것도 있다. 또한, 어떤 것은 버킷리스트를 적기 시작한 이후부터 줄곧 그대로 유지된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변심으로 인해 삭제된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몇 번의 수정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보완된 것도 있다.
현재 나의 버킷리스트에는 책 쓰기, 100명의 지인에게 초상화 그려서 선물하기, 제주도 올레길 완주하기, 마추픽추 여행하기, 산티아고 성지 순례하기, 해외에서 한국어 교사로 활동하기, 다문화 청소년 후원 100명 만들기, 제주도에서 살아보기 등이 등재돼 있다.
적어 두자. 그리고 수시로 들여다보자. 그러면 언젠가는 꼭 실천하게 된다. 적어 두지 않고 머릿속에만 있으면 망각에 의해 증발한다. 사람은 자신의 기억과 자주 타협한다. 마치 그런 일이 애당초 없었던 것처럼.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삶은 지극히 드물다. 후회를 덜 남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한 번뿐인 인생에 후회를 덜 남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다만, 필자가 생각하는 방법은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그리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최대한 다 해보는 것이다.
100세 인생 시대의 후반전에는 남이 나에게 바라는 게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내 인생을 살자.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우선 그 첫걸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 손으로 한번 적어 보자. 지금 바로. 오늘은 당신에게 남은 생의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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