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맛이 무섭다더니, '사내맞선'이 예상할 수 있는 다음 장면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풍기고 있다. 재벌인 남자 주인공이 꿋꿋이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따르고 있는데 왜 매력적일까?
SBS 월화드라마 '사내맞선'(극본 한설희/연출 박선호)은 얼굴 천재 CEO 강태무(안효섭)와 정체를 속이고 강태무와 맞선을 본 직원 신하리(김세정)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 신하리는 친구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진영서(설인아)를 대신해 맞선 자리를 파투 내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선 자리에서 강태무를 만나고, 평소와 같이 진상을 부리며 퇴짜를 맞으려고 한다. 그러나 강태무는 그런 신하리에게 매력을 느끼고, 초고속으로 프러포즈를 한다. 심지어 강태무가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CEO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신하리는 필사적으로 그를 피하기 위해 애쓴다.
클리셰 속에서도 빛나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따뜻한 분위기다. 가족애, 우정, 그리고 사랑이 각각의 캐릭터를 감싸고 있다. 신하리의 가족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지만, 애정이 넘친다. 엄마 한미모(정영주)의 잔소리 속에는 사랑이 섞여 있고, 아빠 신중해(김광규)는 무조건 신하리의 편이다. 강태무의 가족도 그렇다. 오직 손주 걱정뿐인 할아버지 강다구(이덕화)는 하루빨리 강태무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원해 맞선을 종용한다. 강압적인 압박이 아니라 귀여운 투정이다. 강태무도 이를 알기에 순순히 맞선에 응한다.
오랜 친구인 신하리와 진영서는 힘들 때와 슬플 때를 함께하는 진정한 친구다. 무슨 일이 생겨도 서로 가장 먼저 달려가고, 퇴근 후에는 떡볶이에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인생의 고단함을 털어놓는다. 재벌과 서민의 만남이지만, 여느 친구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강태무와 비서 차영훈(김민규)의 관계도 흥미롭다. 이들은 단순한 CEO와 비서의 관계를 넘은 형제애를 보여준다. 강태무가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차영훈의 집을 청소하는 것은 이들이 특별한 우정을 나눈다는 것을 강조하는 지점이다.
달달한 로맨스는 알면서도 보는 뻔한 설렘이 있다. 뜻하지 않은 만남으로 엮인 남녀 주인공이 오해 속에서 사랑이 싹트고, 달달한 애정 행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대리만족을 충족시켜준다. 여기에 만화 속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 같은 완벽한 캐릭터와 진취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의 조화로움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적재적소 배치된 코믹 요소도 한몫한다. 맞선 자리에 나온 신하리가 상대방에게 퇴짜를 맞기 위해 펼치는 작전, 강태무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 다니는 신하리의 모습, 신하리와 진영서의 귀여운 술주정 등은 시청자들을 폭소케 한다. 편안하게 한바탕 웃으면 드라마가 끝났다고 느낄 정도다.
배우들의 호연은 정점을 찍는다. 이번 작품을 통해 한국의 엠마 스톤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김세정은 코믹과 정극을 넘나드는 연기를 펼쳤다. 망가질 때는 작정하고 망가지면서도, 짝사랑의 아픔과 가족에 대한 사랑은 정석으로 보여줬다. 안효섭도 코믹과 애절함 사이를 넘나들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했다. 자기애 넘치는 강태무를 코믹하게 표현하다가도 신하리에 대한 마음을 표현할 때면 진지한 톤으로 중심을 잡았다.
한마디로 착한 드라마다. 복잡한 삼각관계도, 그 안에 심리적으로 갈팡질팡하는 주인공도 없다. 계략을 짜는 빌런도 없고, 오해나 답답함도 없다. 속도감 있는 전개는 시청자들의 피로도를 낮춘다.
시청률 4.9%(닐슨코리아/전국 기준)으로 시작해 약 3배까지 껑충 뛴 '사내맞선'은 종영까지 단 2회만 남았다. 끝까지 순항해 '고전의 힘'을 입증할 수 있을지, 어떤 모습으로 두고두고 회자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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