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고강도 경제 제재를 받는 러시아가 대량 보유 중인 금을 활용해 디폴트 위기를 모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가격이 급격하게 치솟은 금을 현금화해 서방국의 제재에 대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날 러시아 재무부는 달러 채권 이자 1억200만 달러(약 1200억 원)를 완납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지난 18일과 22일에도 각각 1억1700만 달러(약 1400억 원)와 6600만 달러(약 800억 원) 규모의 국채 이자를 상환했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의 주요 은행들은 지난달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퇴출되고, 대외결제 문제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비축하는 외환보유고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는 등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러시아가 채무를 이행하고 있는 것은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값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올해 초 트로이온스당 약 1700달러(약 205만 원)에 불과했던 금값은 이달 들어 1900달러(약 230만 원)를 유지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여파로 한때 2000달러(약 240만 원)선을 돌파하는 강세를 나타내기도 했다. 반면 루블화의 가치는 폭락했다.
현재 러시아중앙은행(CBR)의 금 보유액은 1300억 달러(약 159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트레이딩 이코노믹스도 지난달 말 러시아의 금 보유량을 2299t으로 집계했다. 이는 미국(8133t), 독일(3359t), 이탈리아(2452t), 프랑스(2436t)에 이어 세계 5위에 달한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무력 병합 이후 금 보유고를 늘리는 데에 주력해 왔다. 그 결과 러시아의 외환보유액 중 금 비중은 2015년 4분기 12.2%에서 지난해 2분기 21.7%로 5년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하게 된 바 있다.
대량 금 보유고가 대러시아 제재의 허점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미국 재무부도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는 반응이다. 지난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CBR과 연관돼 있는 금을 포함한 어떤 거래도 미 당국의 제재 대상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며 글로벌 주요 국가들과 함께 금에 대한 새로운 제재 조치안을 준비할 것이라고 뉴욕타임즈(NYT)는 보도했다.
한편 베네수엘라, 쿠바, 브라질 등 일부 반미 국가들이 푸틴 정권을 물밑에서 지원한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훌리오 보르헤스 베네수엘라 야당 대표는 지난해 아프리카 말리에서 제련한 금이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달러·유로화로 세탁된 뒤 러시아로 유입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베네수엘라는 미국과 반목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한편 러시아는 오는 31일에도 국채 이자 4억4700만 달러(약 5400억 원)를 지급해야 한다. 또 다음 달 4일은 20억 달러 규모의 원금 상환 만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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