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경제난을 겪는 스리랑카에서 정전사태가 지속되는 등 시민들이 불편을 겪으면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민심이 폭발하자 결국 당국은 비상사태 선언에 이어 내각 총사퇴로 사태 수습에 나섰다.
4일(현지시간) 데일리미러 등 스리랑카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스리랑카 내각의 장관 26명 전원은 전날 밤 사임의사를 표했다. 디네시 구나와르데나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이 새 내각을 구성할 수 있도록 모든 장관이 사직서를 제출했다"며 이번 결정은 경제 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 대해 논의한 후 내려졌다고 말했다.
스리랑카는 현재 1948년 독립 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고 외신들은 지적한다.
야권 등은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이 이 같은 경제 위기를 초래했다며 사임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 시민은 지난달 31일 대통령 관저 앞으로 몰려가 군경 차량에 불을 지르는 등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이에 고타바야 대통령은 지난 1일 밤 치안·공공질서 보호, 필수 서비스를 유지해야 한다며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어 2일 오후 6시부터 4일 오전 6시까지 전국적으로 통행 금지령도 발동했다. 그런데도 일부 야권 정치인과 시민 수천명은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처럼 상황이 심상치 않자 당국이 '내각 사퇴' 카드로 민심 수습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고타바야 대통령은 새 내각에 야권 인사들도 포함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스리랑카는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총리도 내정과 관련해 상당한 권한을 갖는 등 의원내각제 요소가 가미된 체제를 운용 중이다. 이런 스리랑카 정계는 라자팍사 가문이 완전히 장악한 채 사실상 '가족 통치 체제'가 구축된 상태다. 전임 대통령 출신으로 총리를 맡은 마힌다 라자팍사는 고타바야 대통령의 형이다. 이들의 형인 차말은 관개부 장관직을 맡았고, 마힌다의 아들인 나말은 청년체육부 장관을 맡는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작년 7월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바실은 고타바야의 동생이다.
라자팍사 가문은 2005∼2015년에도 독재에 가까운 권위주의 통치를 주도했다. 당시에는 마힌다가 대통령을 맡았고 대통령이 겸임하는 국방부 장관 아래의 국방부 차관은 고타바야가 역임했다. 차말, 나말, 바실 등 라자팍사 가문 장관 3명은 이번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마힌다 총리는 아직 자리를 지키는 중이다.
관광산업이 주력인 스리랑카 경제는 2019년 4월 '부활절 테러'에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덮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는 민생을 살리겠다며 통화량을 늘리고, 수입 규제와 감세 정책을 펼쳤지만 물가는 급등했고 외화는 부족해지는 등 상황은 오히려 갈수록 악화했다. 이에 국가 부도 위기까지 몰려 있다.
스리랑카의 올해 총부채 상환 예정액은 70억 달러(약 8조5000억 원)이지만, 외화보유액은 20억 달러(약 2조4000억 원)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신용평가사는 지난해 말부터 이미 스리랑카의 국가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18.7%까지 치솟았다. 식품, 의약품, 종이 등 필수품 수입 등에도 차질이 생기면서 민생 경제는 뿌리째 붕괴하는 조짐을 보인다. 특히 최근 발전 연료가 부족해 하루 13시간씩 순환 단전이 이뤄지기도 했다.
다만, 지난 2일 인도가 지원한 경유 4만t이 스리랑카에 도착하면서 이후 순환 단전 시간은 1시간 40분∼5시간 수준으로 다소 완화됐다.
이 같은 상황 속에 스리랑카 정부는 인도, 중국,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손을 내밀며 난국 타개를 시도하고 있다. 인도는 지난달 17일 스리랑카에 여신 한도(마이너스 통장과 비슷한 개념)를 확대해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를 긴급 지원하는 등 올해 들어 여러 차례 스리랑카를 도왔다. 중국도 25억 달러(약 3조 원) 규모의 지원안을 검토 중이며 스리랑카 당국은 IMF와는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협상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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