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품이 무시당하던 때가 있었다. 외제 물건, 소위 ‘쩨’에 비해 품질이 나쁘고 값이 싸지 않아도 우리 국민은 우리 물건을 써야 한다고, 그게 애국이라고 가르치던 때가 있었다. 국산 전자 제품을 유럽으로 수출한다고 떠들썩하던 1980년대에 필자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전자 제품은 국산품인지 외제품인지를 따져서 사는 것이 아니라 가격과 성능, 디자인을 비교해서 사는 것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1990년대 초 국내에서 굴러다니는 자동차의 90% 이상이 국산이던 시절,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내게 말했다. “교수님, 저희 회사 차를 사실 거면 제게 미리 말씀하세요. 제가 특별히 공장에 들어가서 수출용 차로 뽑아 드릴게요. 내수용과 수출용은 철판 두께부터 달라요”라고. 2000년대에 미국에 가보니 똑같은 모델의 국산 차를, 심지어 철판도 훨씬 두껍다는데 국내 가격보다 훨씬 싸게 팔고 있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물건을 살 때면 국내산으로 둔갑한 수입산을 잘못 사는 건 아닌지 살피게 됐고, 외국에서는 우리나라 상표의 가전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부의 상징처럼 여긴다는 말도 들린다. 자동차 철판도 이제는 수출용과 내수용이 다르지 않다는 걸 필자는 굳게 믿는다. 그뿐이랴. 우리 말과 글은 세계적으로 어쩌면 그리도 인기가 높은지 뜻도 알 수 없을 텐데 한글이 새겨진 물건들이 외국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외국 여행 중 한국말로 이야기하며 걸어가는데 그 소리를 듣고 반가워하며 말을 거는 외국인을 만났다는 이야기도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다. 외국의 세종학당, 한글학교에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몇백 명씩 줄을 선다. 외국 대학의 한국학 전공 커트라인은 다른 전공보다 월등히 높고, 한국 대학의 국어국문학과에는 전교에서 가장 많은 수의 외국인 유학생들이 등록해 있다.
이제는 우리 말과 글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에서 나아가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과 교원 양성을 설계할 때다. 한국을 알아주고 한국어를 배워주는 것이 고마워서 외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원하는 데서 더 나아가 한국어 교육과 한국학 연구가 각 나라에서 스스로 이루어지도록 지원해야 한다.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부모의 심정으로 외국의 현지인들이 한국어 교원이 돼 자기네 국민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단계로 변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영어 교사를 보면 원어민 교사의 수보다 영어 교육을 전공해서 교사가 된 내국인의 수가 훨씬 많다. 국립국어원은 외국 국적의 한국어 교사를 양성할 목적으로 필수 교육과 평가를 거쳐 인증서를 발급하는 ‘K티처 인증제’를 준비하고 있다. ‘K티처’라는 명칭은 준비 단계에서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가면 당연히 우리말로 바꿀 예정이다. 한국어 선생님이니 줄여서 ‘한샘’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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