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에 ‘지방방송 꺼라’는 말 좀 들은 편입니다. 수업시간에 많이 떠들었단 뜻이겠죠. 그때 다 하지 못한 지방방송을 다시 켜려고 합니다. 우리 지역의 살림꾼을 뽑는 6·1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17개 광역단체장 선거 얘기를 얇고 넓게 훑어보겠습니다. 지방방송의 볼륨을 조금만 키워보겠다는 생각입니다.
우선 경기지역을 살펴보겠습니다. 흔히들 경기지사를 ‘대권의 무덤’이라고 표현합니다. 1300여만의 최대 인구를 이끄는 광역자치단체장이지만 바로 옆 동네가 수도 서울이라 다소 묻히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위상 면에서도 서울시장은 장관급 대우를 받지만, 경기지사는 다른 광역단체장과 함께 차관급으로 분류됩니다.
이 때문에 이인제, 손학규, 김문수, 남경필, 이재명 등이 대권에 도전했지만, 대선 무대에 올라본 경기지사는 이인제, 이재명 단 두 명뿐입니다. 그마저도 두 사람 모두 선거에선 고배를 마셨죠.
그러나 이번에는 분위기가 조금 다릅니다. 한 달 전 치러진 제20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온 이재명 전 지사가 0.73%포인트 차이로 석패하며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지방선거에는 이 전 지사처럼 대권을 노리거나, 이 전 지사를 지키겠다는 이들이 경기지사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재명 저격수’까지도 출사표를 냈습니다.
민주당, 3+1 경선 윤곽…한결같이 “이재명”
현재 여당인 민주당을 짚어보면 안민석·염태영·조정식(가나다 순) 등 3명이 경기지사 공천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3+1명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 이유는 뒤에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우선 안민석 의원은 경기도 오산에서만 5선을 지낸 중진 의원입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문회 등에서 ‘사이다 발언’으로 유명합니다. 이 전 지사와 16년 지기 동갑내기답게 출마선언문에서도 “이재명을 지키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염태영 전 수원시장은 기초단체장에서 시작해 광역단체장까지 오르는 ‘포스트 이재명’을 꿈꿉니다. 이 전 지사가 대선 기간 동안 운영한 ‘재명이네 마을’을 벤치마킹한 ‘태영이네 마을’을 만들어 선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시흥에서 5선을 지낸 조정식 의원은 민주당 내 대표적인 ‘이재명계’ 의원입니다. 경기지사 인수위원장, 대선 총괄선대본부장 등으로 이 전 지사를 도왔습니다. 조 의원은 “이재명의 가치와 철학을 계승·발전시키겠다”고 각오를 밝혔습니다.
여기에 숨은 후보가 한 명 더 있습니다. 바로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입니다. 김 대표는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이 전 지사와 후보 단일화를 했었습니다. 경기지사 출사표에서도 단일화 당시 이 전 지사와 합의했던 정치교체와 국민통합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민주당은 오는 15일 새로운물결과의 합당절차가 마무리되면 예외조항을 통해 김 대표에게도 경기지사 예비후보 자격을 줄 방침입니다.
민주당의 경기지사 주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이재명’을 전면에 내세우는 상황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박지현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지금 우리는 선거를 하는 것이지, 이재명이랑 누가 누가 더 친하나 내기하는 게 아니다”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유승민·김은혜…국민의힘도 역시 ‘이재명’
아이러니한 것은 국민의힘에서도 ‘이재명’을 외친다는 것입니다. 국민의힘 대권주자 중 한 명인 유승민 전 의원은 경기지사 출마선언을 하며 “이 전 지사의 잘된 정책은 확실히 계승하고 잘못된 건 분명히 개혁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실용주의 노선을 통해 확장성을 갖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대구에서 주로 활동한 유 전 의원이 경기지사에 출마한 것을 두고 차기 대선을 위한 행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반면 김은혜 의원은 경기지사 출마 선언 후 첫 행보로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을 선택하며 ‘대장동 저격수’ 이미지를 이어가는 모습입니다. 김 의원은 출마선언문에서도 “이번 경기지사 선거는 이재명의 시대를 지속하느냐, 극복하느냐를 묻는 선거”라고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주자인 심재철 전 의원은 “이 전 지사는 (경기도를) 대권 초석으로 이용했다”고 비판하며 이 전 지사와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이 전 지사 본인이 직접 선거에 나설지도 관심입니다. 김은혜 의원의 지역구인 성남 분당갑이나, 성남시장 선거 차출 가능성이 제기되는 김병욱 민주당 의원의 지역구인 성남 분당을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열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 내에서는 이 전 지사가 5년 뒤 대권에 재도전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보궐선거에 등판해 국회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이처럼 이번 경기지사 선거는 ‘기승전 이재명’ 양상으로 진행되는 모습입니다. 그만큼 이번 대선에서 이 전 지사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는 분석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여야 후보 모두가 ‘이재명’에만 매몰되는 모습은 아쉽습니다. 후보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보다는 이 전 지사의 후광, 또는 반작용에만 기대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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