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총리 후보로 꼽히던 영국 재무부 장관이 부인 세금 문제로 곤경에 처했다. 인도 국적인 그의 부인이 외국인의 해외 소득 면세를 인정해주는 영국의 조세 제도를 이용해 수백 만 파운드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논란의 시작은 영국 인디펜던트지의 지난 7일(현지 시간) 단독 보도였다. 인디펜던트는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 2명을 인용해 리시 수낙 영국 재무장관의 아내 아크샤타 무르티가 해외 소득 수백만 파운드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BBC는 무르티가 약 210만 파운드(약 33억원)의 세금 납부를 피했다고 추정했다. 무르티는 인도 IT 대기업인 인포시스 창업자의 딸로, 약 7억 파운드(약 1조 1000억원)의 회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산가다.
무르티가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근거는 영국의 '송금주의 과세제'(non-dom)다. 영국의 장기체류 외국인들은 매년 일정한 금액을 납부할 경우 해외 소득을 영국으로 송금하기 전까지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BBC에 따르면 영국과 인도는 1956년 세금 이중 부과를 막기 위해 이같은 제도를 도입했다. BBC는 무르티가 연간 약 3만 파운드(4800만원)를 내고 약 210만파운드(33억원)의 세금 납부를 피했다고 추산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수낙 장관은 공직자가 아닌 자신의 아내가 세금 문제로 비난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반발했다. 최근 배우 윌 스미스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상자 크리스 록이 자신의 아내를 조롱한 것에 반발해 록을 폭행한 것을 언급하며 "내 심정은 윌 스미스와 비슷했지만 적어도 나는 누군가를 때리지는 않았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낙 장관아 최근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며 세금 인상을 강행했던 터라 그의 해명은 별다른 공감을 얻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영국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후 1년이 넘게 미국 영주권을 보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BBC는 수낙 장관이 지난해 10월 미국 방문을 앞두고 영주권을 반납했지만, 영주권 보유 기간 동안 미국에 세금신고를 했다고 보도했다.
결국 무르티는 남편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해외 소득에 대한 세금을 영국에 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낙 장관은 자료유출 경위 조사를 지시한 데 이어 10일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에게 자신의 그간 행위에 공직자 윤리 충돌 소지가 있는지 검토해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한편 일각에서는 수낙 장관이 2018년 임명 당시 국무조정실에 아내의 세금 현황을 보고했다는 점을 들어 일련의 보도 배경에 총리실이 있다는 추측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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