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고강도 긴축을 외치는 상황에서 국내 금융회사들은 되레 대출 경쟁을 벌이는 등 역주행을 하고 있다. 1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의 2분기 가계주택대출태도지수는 2년 9개월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다. 전 분기 ‘-14’에서 ‘11’로 껑충 뛰어올라 은행 대출 영업이 공격적으로 진행될 것임을 보여준다. 은행들은 이미 지난달 말부터 대출 문턱을 낮추기 시작해 지금은 지난해 가계 대출 총량 규제 시행 전으로 여신 한도를 늘렸다. 대형 은행의 신용대출 한도는 최대 3억 원까지 올라갔다. 대출 금리도 깎아주기 시작했다. 신용대출가산금리를 낮추고 쿠폰을 통해 우대금리도 제공하고 있다.
은행권의 대출 빗장 풀기는 돈벌이에 급급해 통화 당국의 긴축 움직임을 무력화하는 조치다.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로 가계 대출이 석 달 연속 줄어들자 실적을 채우기 위해 돈줄을 푸는 것이다. 5대 시중은행(KB·신한·하나·우리·NH)의 가계 대출은 3월 한 달 2조 7435억 원이나 늘었다. 금리 측면에서도 예대 마진이 과도하다는 지적에 따라 수신 금리를 올리기보다는 실적을 위해 한시적으로 대출 금리를 내리는 꼼수 영업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자의 가계 부채 경고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후보자는 “가계의 이자 상환 부담이 커지면 소득·자산 대비 부채 규모가 큰 가구를 중심으로 고위험 가구 편입이 늘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산을 팔아도 빚을 갚기 어려운 고위험 가구는 지난해 38만 1000가구에 달했다. 지금 경기는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아지는 비상 국면이다. 심지어 자산 디플레이션까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대출 한도를 늘리는 것은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격이다. 중소기업·자영업자 등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이뤄지지 않아 금융회사의 ‘부실 분식’까지 우려되는 형국이다. 금융사들은 실적 경쟁으로 부실을 키워 국민들에게 큰 부담을 안긴 과거 사례들을 복기하면서 정상 영업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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