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14일 전격 만찬 회동을 하면서 갈등은 일단 봉합됐다. ‘공동정부’ 무산으로 이어질 경우 새 정부의 출범부터 타격을 입는 데다 6·1 지방선거에도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해서다. 특히 초대 내각의 청문회를 앞두고 힘을 합쳐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도 작용했다. 윤 당선인은 물론 안 위원장, 그 어느 쪽도 승자가 없는 ‘패자의 게임’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갈등은 지난달 3일 야권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뒤 43일 만에 공개적으로 표출됐다. 안 위원장이 이날 돌연 일정을 모두 취소하면서 야권이 술렁였다. 안 위원장은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서 열린 인수위원회 첫 회의에서 “토요일·일요일을 포함해 휴일 없이 일해야만 될 것 같다. 모두 밤을 새워야 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저도 함께 열심히 일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날 예고도 없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잠적한 것이다.
사태의 진원지는 전날 윤 당선인이 밝힌 2차 장관 후보자 인선이었다. 명단에는 안 위원장이 추천한 인사가 단 한 명도 반영되지 않았다. 10일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8개의 장관직에 이어 전날 2차 내각 인선의 명단에서도 안 위원장이 제안한 인사의 이름이 오르지 못했다.
입각설이 무성했던 안 위원장의 최측근인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는 윤 당선인이 낸 인사에 대해 “이명박·박근혜 때의 사람들이 그대로 돌아왔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안 위원장이 2차 인선 발표 이후 인수위 분과 보고를 받는 ‘도시락 회동’ 일정에 불참하면서 불화설이 제기됐다. 그런데 이날 안 위원장이 두문불출하면서 사태가 더 커진 것이다.
안 위원장 측에서는 “공동정부의 약속을 깼다”는 불만까지 터져나오는 상황이다. 윤 당선인과 안 위원장은 지난달 3일 국회 소통관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을 선언했다. 두 사람은 ‘원팀’의 조건으로 ‘국민통합정부’를 내세웠다. 구체적으로 △미래 정부 △개혁 정부 △실용 정부 △방역 정부 △통합 정부 등 다섯 가지를 약속했다. 나아가 두 사람은 “국민통합정부는 대통령이 혼자서 국정을 운영하는 정부가 아닐 것”이라며 “인수위원회 구성부터 공동정부 구성까지 함께 협의하며 역사와 국민의 뜻에 부응할 것”이라는 합의문도 밝혔다.
하지만 43일 만에 끝난 초대 내각에 안 위원장 측 사람은 없었다. 안 위원장 측은 “중요한 것은 내각 인선 과정에서 논의가 없었다”며 “(발표할) 명단조차 (안 위원장에게) 사전 보고가 안 됐다는 부분이 좀 비정상적인 체계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위원장께서 열심히 일에 매진해서 집중했다”며 “(안 위원장이) 이런 비정상적인 체계에서 좀 돌아보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신 것 같다”고도 말했다.
윤 당선인은 3차 내각 인선을 마무리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안 위원장의 칩거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글쎄 저는 좀 이해가 안됩니다만 제가 (안 위원장에게) 추천을 받았고 또 인선 과정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렸다”며 “거기에 대해 뭐 무슨 아무 문제가 없다고 저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무슨 일정을 취소했다고 하는데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제 (인수위) 분과 보고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안 나오신 것을 갖고 일정을 취소했다는 그런 식으로 (언론에서) 보고 계신 모양”이라고도 했다.
윤 당선인 측에서는 안 위원장의 행동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안 위원장이 공동정부의 핵심인 국무총리직을 스스로 고사했다는 것이다. 또 안 위원장의 추천 인사 역시 모두 검증했지만 다른 후보자들을 우선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윤 당선인 측의 한 핵심 관계자는 “국무총리를 했으면 당연히 (헌법상 권한인) 장관 제청권을 행사하셨을 것”이라며 “(안 위원장은) 행정부 대신 정당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에서는 안 위원장이 거취를 결단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 경우 사실상 공동정부의 약속은 깨지고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중심의 차기 정부로 출발한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6월 전국 지방선거에서 중도층 이탈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안 위원장 역시 자리싸움을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힘들다. 사태가 커지자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나서 봉합을 시도했다. 한 후보자는 이날 “공동(정부) 운영 원칙은 유지하겠다. 공동 국정 정신을 기반으로 하겠다”고 강조했다.
결국 윤 당선인이 이날 강남 모처에서 안 위원장과 회동을 통해 갈등을 일단 해결했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두 사람이)완전히 하나가 되기로 했다”며 “공동정부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손잡고 가자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차관급 기관, 공공 부문에서 안 위원장 측이 추천한 인사를 기용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고 있다.
물론 갈등이 다시 분출될 여지는 남아 있다. 윤 당선인의 추가 인선에 안 위원장 측의 의견이 또다시 반영되지 않으면 공동정부 구상은 또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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